초콜릿 속으로 들어간 한글…문화유산 굿즈, 산업의 언어로
- 롯데웰푸드, ‘사민필지’ 서체와 한글 자모 담은 ABC 한정판 출시
- 한글날 제정 100돌 맞아 상품·콘텐츠 개발과 국내외 유통 지원 확대
- 문자 장식 넘어 놀이·학습·관광 경험 결합한 문화상품으로 진화
한글이 기념일에만 등장하는 상징에서 일상적으로 소비하고 체험하는 문화상품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식품 포장에 한글을 새기는 수준을 넘어 글자의 형태와 역사, 조합 원리를 제품에 담고 국내외 유통까지 연결하려는 움직임이다.
롯데웰푸드는 한글날 제정 100돌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 국립한글박물관과 협업한 ‘에이비씨(ABC) 한글 한정판’을 출시한다고 11일 밝혔다.
한정판 포장에는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한 ‘사민필지’ 초판본의 본문 서체가 적용됐다. 사민필지는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가 저술한 우리나라 최초의 순한글 세계지리 교과서다. 제품 뒷면에 있는 정보무늬(QR코드)를 이용하면 사민필지의 해설과 역사적 배경을 확인할 수 있다.
초콜릿 형태도 기존 알파벳에서 한글로 바뀌었다. 쌍자음을 포함한 자음 19종과 모음 10종, 특수문자 5종, 숫자 10종 등 총 44종이 무작위로 담긴다. 소비자가 자음과 모음을 모아 원하는 단어를 만들어 볼 수 있어 초콜릿을 먹는 과정에 한글 조합 놀이가 더해졌다.
1982년 출시된 장수 제품에 옛 한글 자료를 접목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익숙한 대중 상품을 통해 박물관 소장 자료를 알리고, 젊은 소비자와 외국인 관광객이 한글을 어렵지 않게 접하도록 설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협업은 2026년을 전후해 한글문화상품이 본격적으로 확장되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올해는 훈민정음 반포 580돌과 한글날 제정 100돌, 한글점자 ‘훈맹정음’ 반포 100돌이 겹치는 해다. 국립한글박물관은 2026년을 ‘한글의 해’로 정하고 전시와 축제, 교육, 상품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와 국립한글박물관은 공식 브랜드 ‘더한글’을 통해 기업과 창작자의 한글문화상품 및 콘텐츠 개발도 지원한다. 지원 범위는 제품 제작에 그치지 않고 국내외 전시와 팝업스토어, 유통·판로 개척까지 이어진다. 올해는 훈민정음과 조선시대 가집 ‘청구영언’을 활용한 상품뿐 아니라 영상과 음악 등으로 지원 분야를 넓혔다.
한글문화상품은 패션과 문구, 식기, 생활용품을 넘어 식품과 디지털 콘텐츠로도 확장되고 있다. 한글의 간결한 선과 조합 구조는 시각적으로 구별하기 쉬워 상품 디자인에 활용하기 좋고, 소비자가 직접 글자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는 참여형 콘텐츠로 발전할 여지도 크다.
한국 고유의 문화와 지역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관광기념품에 대한 관심도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한다. 2026 대한민국 관광기념품 공모전에는 1,358건이 접수됐으며 이 가운데 25점이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방한 관광객 증가와 K-콘텐츠 확산이 이어지면서 한국을 직관적으로 기억하게 하는 문자와 전통문화가 새로운 상품 소재로 주목받는 모습이다.
다만 문화유산 협업이 한정판 포장이나 단기 화제에 머물면 지속적인 산업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원자료에 대한 정확한 해설과 권리 관리, 상품의 완성도, 안정적인 유통망을 함께 갖춰야 한다. 역사적 의미를 소비 촉진 수단으로만 활용하지 않고 해당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경험으로 연결하는 것도 중요하다.
ABC 한글 한정판은 한글이 읽고 쓰는 문자를 넘어 먹고, 만지고, 조합하는 문화 경험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공기관이 보유한 문화자산과 기업의 제품 개발·유통 역량이 균형 있게 결합한다면 한글문화상품은 기념일 굿즈를 넘어 국내외 시장에서 통용되는 문화산업의 한 분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
더 좋은 미래를 위한 콘텐츠 플랫폼 – <굿퓨처데일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