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IT

페라리도 결국 전기차로…애플 디자인 입은 ‘루체’, 슈퍼카 시장 판 바꾼다

  • 페라리 창사 79년 만 첫 순수 전기차 공개…가격만 약 9억6000만원
  • 애플 출신 조너선 아이브 디자인 참여, 삼성 OLED 디스플레이 독점 적용
  • 전동화 시대에도 ‘페라리 감성’ 유지할 수 있을지가 최대 관전 포인트

이탈리아 슈퍼카 브랜드 페라리가 창사 이후 처음으로 순수 전기차를 공개하며 전동화 시대 전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내연기관 엔진 사운드와 고회전 감성으로 상징되던 페라리가 전기차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이어갈지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페라리는 26일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차 ‘루체(Ferrari Luce)’를 공개했다. 공개 행사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진행됐으며, 완성차 업계에서는 이번 모델을 페라리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변곡점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

루체는 단순한 전기차가 아니라 페라리가 미래 전략을 집약한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기모터와 배터리팩 등 핵심 부품 대부분을 이탈리아 마라넬로에서 직접 설계·개발·생산했다.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외부 배터리 기업이나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는 것과 달리, 페라리는 핵심 기술 내재화를 통해 브랜드 독자성을 유지하려는 전략을 택했다.

성능 역시 슈퍼카 브랜드의 자존심을 반영했다. 루체는 네 개의 전기모터를 각 바퀴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구동되며 최고출력 1050마력을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2.5~2.6초, 시속 200㎞까지는 6.8초에 불과하다. 최고속도는 시속 310㎞ 이상이며, 122kWh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해 1회 충전 시 약 530㎞ 이상 주행할 수 있다.

특히 루체는 페라리 최초의 4도어 5인승 모델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기존 페라리는 구조적 한계로 인해 대부분 2인승 또는 4인승 구성에 머물렀지만,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적용하면서 차체 바닥에 배터리를 배치할 수 있게 됐고 실내 공간 활용성이 크게 개선됐다. 고성능과 실용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전략이 반영된 셈이다.

디자인에는 애플의 전 최고디자인책임자(CDO) 조너선 아이브가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그룹 ‘러브프롬(LoveFrom)’이 참여했다. 아이폰과 아이맥 디자인 철학을 이끌었던 인물이 슈퍼카 디자인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이 높다. 외관은 유리 온실 형태를 연상시키는 공기역학 중심 디자인을 적용해 미래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페라리 루체’의 후면과 실내 모습

실내에는 삼성디스플레이의 OLED 패널이 독점 적용됐다. 운전석 계기판과 센터 제어 패널, 뒷좌석 디스플레이 등에 삼성 OLED 기술이 들어갔으며, 일부 영역은 다층 구조 설계를 적용해 얇고 입체감 있는 인터페이스를 구현했다. 자동차 산업에서 디스플레이 경쟁력이 중요해지는 흐름 속에서 삼성디스플레이의 프리미엄 차량용 OLED 시장 영향력도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격은 약 55만유로, 한화로 약 9억6000만원 수준으로 책정됐다. 웬만한 서울 아파트 한 채 가격에 맞먹는 수준이지만, 업계에서는 희소성과 브랜드 상징성을 고려할 때 초기 물량 대부분이 빠르게 소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페라리는 앞서 2030년까지 전체 판매 차량의 20%를 순수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동시에 “페라리만의 감성과 주행 경험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입장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결국 향후 성공 여부는 단순한 전동화가 아니라 전기차 시대에도 ‘페라리다운 감성’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루체의 등장이 럭셔리카 시장 전체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테슬라가 전기차 대중화를 이끌었다면, 이제는 페라리와 포르쉐, 람보르기니 같은 초고가 브랜드들이 전동화 경쟁에 뛰어들며 전기차 시장이 본격적인 프리미엄·럭셔리 경쟁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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