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처/테크

SK하이닉스, 차세대 AI 메모리 ‘HBF’ 첫 표준 공개…낸드 시장 주도권 선점 나선다

  • 샌디스크와 HBF 첫 표준 규격 공개…HBM과 SSD 사이 새로운 메모리 계층 제시
  • 최대 512GB·초당 3.0TB 대역폭 지원…구글·텐스토렌트 등과 생태계 확대
  • 375단 10세대 4D 낸드도 첫 공개…내년 초 고성능 eSSD 양산 추진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에 이어 차세대 인공지능(AI) 메모리 시장을 겨냥한 고대역폭플래시(HBF) 기술 표준을 선제적으로 제시했다. AI 데이터 처리량 증가로 메모리 용량과 속도 사이의 병목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HBF를 새로운 메모리 계층으로 정착시켜 차세대 낸드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는 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서 열린 ‘퓨처 오브 메모리 앤드 스토리지(FMS) 2026’에서 샌디스크와 공동으로 HBF의 첫 표준 규격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번 표준은 양사가 지난해 8월 HBF 표준화 협력에 착수하고 올해 2월 관련 컨소시엄을 출범시킨 지 약 6개월 만에 내놓은 첫 성과다. 단순히 제품 개발에 그치지 않고 메모리 제조사와 AI 가속기 업체,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공통 규격을 조기에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HBF는 HBM과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사이에 위치하는 새로운 메모리 장치다. 현재 AI 가속기는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연산을 수행하고 HBM이 연산에 필요한 데이터를 빠르게 공급하는 구조로 작동한다. 그러나 AI 모델과 데이터 규모가 빠르게 커지면서 HBM만으로는 필요한 용량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반면 SSD는 대용량 저장이 가능하지만 HBM과 비교하면 데이터 처리 속도가 느리다. HBF는 낸드플래시 기반의 대용량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기존 SSD보다 높은 대역폭을 제공해 HBM과 SSD의 성능 격차를 줄이는 역할을 맡는다.

AI 가속기 내부에서 HBF가 상용화되면 대규모 AI 추론 과정에서 자주 사용하는 데이터를 HBM에만 의존하지 않고 별도의 고속·대용량 메모리 계층에 저장할 수 있다. 이를 통해 HBM의 용량 부담을 줄이고 GPU의 데이터 대기 시간을 단축해 AI 시스템 전체의 연산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SK하이닉스와 샌디스크가 공개한 표준은 낸드 다이를 8단과 16단으로 적층하는 두 가지 구성을 기반으로 최대 512기가바이트(GB)의 용량을 지원한다. 대역폭은 세 가지 등급으로 구분해 초당 0.4테라바이트(TB)에서 최대 3.0TB까지 구현할 수 있도록 했다.

HBF와 GPU·중앙처리장치(CPU) 등을 연결하는 방식에는 업계의 개방형 칩렛 연결 규격인 UCIe를 채택했다. 서로 다른 기업이 생산한 프로세서와 메모리를 고속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해 특정 제조사에 종속되지 않는 개방형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표준 규격에는 연결 인터페이스와 전기적 특성뿐 아니라 HBF 다이 적층 공정의 신뢰성, 패키징 가이드, 데이터 입출력을 위한 소프트웨어 지침 등도 포함됐다. 제품 개발에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준을 함께 제시해 관련 기업의 시장 참여를 앞당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이번 표준을 세계 최대 개방형 데이터센터 기술 협력체인 오픈컴퓨트프로젝트(OCP)를 통해 공개했다. 현재 HBF 컨소시엄에는 구글과 AI 반도체 기업 텐스토렌트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앞으로 AI 가속기 개발사와 빅테크 기업, 장비업체로 협력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HBF는 이르면 2030년 전후 본격적인 상용화가 예상되는 기술이다. 새로운 메모리 시장에서는 기술 성능뿐 아니라 초기 표준을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제품 호환성과 공급망, 고객사 확보 경쟁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SK하이닉스가 샌디스크와 손잡고 초기 규격 마련에 나선 것도 차세대 AI 스토리지 생태계에서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는 이번 행사에서 차세대 낸드 기술도 함께 공개했다. 회사는 개발 중인 10세대(V10) 375단 4D 낸드 웨이퍼와 제품을 처음 선보였다. 해당 제품은 이전 세대보다 전력 대비 성능을 2.5배 높여 높은 성능과 전력 효율을 동시에 요구하는 AI 데이터센터 환경에 적합하도록 설계됐다.

회사는 내년 초 375단 4D 낸드를 적용한 고성능·고용량 기업용 SSD(eSSD)의 양산에 착수할 예정이다. HBF가 장기적인 차세대 시장을 겨냥한 기술이라면 10세대 낸드는 단기간 내 AI 데이터센터 수요에 대응할 핵심 제품이라는 점에서 두 전략이 서로 보완하는 구조다.

이번 발표는 SK하이닉스가 HBM 중심의 AI 메모리 경쟁력을 낸드와 스토리지 분야로 확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 산업의 경쟁축이 단순 연산 성능에서 데이터 저장과 이동, 전력 효율을 포함한 시스템 전체 최적화로 옮겨가면서 메모리와 스토리지의 경계도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가 학습 중심에서 추론 중심으로 확산할수록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불러오고 저장하는 기술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HBF가 상용화되면 낸드플래시는 기존 저장장치를 넘어 AI 연산을 직접 보조하는 핵심 반도체로 역할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김천성 SK하이닉스 솔루션개발 부문장은 “AI 활용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데이터 처리 구조 전반의 재설계가 요구되는 시점”이라며 “HBF를 통해 메모리와 스토리지의 경계를 확장하고 시스템 전반의 효율을 높이는 새로운 아키텍처 구현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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