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은 사고 선물은 바로 배송…추석 소비, ‘정성’보다 ‘시간’ 산다
- 간편 제수음식·휴대형 선물·3시간 배송으로 명절 준비 간소화
- 고물가·핵가족화에 필요한 만큼 구매하는 실속 소비 확산
- 음식 준비에 쓰던 시간을 가족·휴식·여행으로 재배분
추석을 앞둔 유통가의 경쟁이 ‘얼마나 풍성한가’에서 ‘얼마나 간편한가’로 이동하고 있다. 전과 나물은 완제품으로 사고, 선물은 귀성길에 들고 가거나 명절 직전 배송받는 방식이다. 상품 자체보다 준비 과정에서 절약되는 시간과 수고가 중요한 구매 기준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마트는 추석 당일인 오는 25일까지 자체 간편식 브랜드 피코크의 제수용 간편식 55종을 행사카드로 결제하면 최대 20% 할인한다. 송편과 모둠전, 소고기육전, 떡갈비, 너비아니, 잡채 등 차례상에 필요한 음식을 폭넓게 구성했다.
명절에 여러 사람이 함께 먹을 수 있도록 기존 제품보다 용량을 약 2배 늘린 떡갈비와 너비아니도 마련했다. 즉석조리 코너에서는 오색전과 동태전, 완자전 등을 담은 모둠전과 나물세트를 판매한다. 재료를 다듬고 조리하는 과정 없이 데우거나 상에 올리면 되는 상품들이다.
수요는 실제 매출로 확인되고 있다. 지난해 추석 행사 기간 이마트의 전·떡갈비·너비아니류 매출은 전년보다 12% 증가했다. 즉석조리 나물류는 14%, 튀김·너비아니류는 29% 늘었다. 명절 음식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약해지면서 완제품 구매가 예외적인 선택에서 일상적인 준비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다.
롯데백화점은 이동과 배송의 편의성을 공략한다. 생과일 찹쌀떡과 수제 도자기를 함께 구성한 상품, 김부각과 전병, 올리브오일, 육포·캐러멜 등을 귀성길에 들고 가기 편한 ‘핸드캐리 기프트’로 선보였다. 크고 무거운 선물보다 이동하기 쉽고 받는 사람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구성을 강화했다.
명절 직전까지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소비자를 위한 신속 배송도 운영한다. 본점과 잠실점 등 수도권 17개 점포에서 오는 23일 오후 6시까지 선물세트를 구매하면 점포 반경 5㎞ 이내 주소지에 3시간 안에 배송한다. 선물을 미리 예약하고 택배 마감일을 계산하던 방식에서 필요할 때 바로 구매하고 전달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1인가구와 맞벌이 가구 증가, 가족 규모 축소, 고물가가 함께 자리한다. 차례상 전체를 직접 준비하면 여러 종류의 재료를 구매해야 하고 남은 음식도 처리해야 한다. 필요한 음식만 완제품으로 구입하는 방식은 조리시간뿐 아니라 재료 낭비와 보관 부담도 줄여준다.
온라인 구매도 명절 소비의 주요 경로가 됐다. 최근 농식품 소비 조사에서는 추석 선물의 온라인 구매 비중이 10년 전 9.0%에서 37.4%로, 명절 음식의 온라인 구매 비중은 2.0%에서 21.0%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는 매장을 여러 곳 돌아다니기보다 온라인에서 비교하고 필요한 양만 주문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간편식 확산을 곧바로 명절 전통의 소멸로 볼 필요는 없다. 차례나 가족 모임을 없애기보다 이를 준비하는 노동을 외부 상품과 서비스로 대체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전 부치기와 나물 준비처럼 특정 가족 구성원에게 집중됐던 가사노동을 줄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다만 간편함이 항상 경제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완제품을 여러 개 구입하면 직접 조리할 때보다 비용이 커질 수 있고, 개별 포장 증가로 쓰레기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유통업체에는 적정 용량과 가격, 친환경 포장, 남김을 줄일 수 있는 상품 설계가 새로운 과제로 남는다.
올해 추석 유통 상품들이 보여주는 변화는 분명하다. 소비자가 구매하는 것은 전과 송편, 선물세트만이 아니라 음식 준비와 배송에 들였던 시간이다. 절약된 시간을 가족과의 대화나 휴식, 여행에 사용하는 ‘시간 중심 명절’이 새로운 추석 풍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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