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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 세계 최대 美 방산시장 뚫었다…한국 무기 수출 ‘새 이정표’

  • 한화디펜스USA, 미 육군에 K9MH 시제품 6문 공급…옵션 포함 최대 18문
  • 기본계약 약 1400억원·총사업비 최대 3665억원…실전 운용평가 후 양산 여부 결정
  • 최대 500문 후속사업 가능성…현지생산·탄약 호환·정비체계 구축이 본계약 관건

한국이 미국의 지원으로 포병전력을 재건했던 6·25전쟁 이후 76년 만에 한국 기업이 미국 육군의 차세대 포병전력 구축에 참여하게 됐다. 유럽과 아시아, 중동에서 수출 성과를 쌓아온 K9 자주포가 세계 최대이자 진입 장벽이 가장 높은 미국 방산시장의 문을 열면서 한국 방위산업의 글로벌 위상도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국 법인 한화디펜스USA가 미 육군과 K9 차륜형 자주포인 ‘K9MH’ 시제품 6문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19일 밝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설명에 따르면 국산 무기체계가 미국 정부와 공급계약을 체결한 첫 사례다.

기본 계약금액은 1억30만달러로 약 1400억원이다. 미 육군이 옵션을 행사하면 시제품 12문이 추가돼 공급 규모는 최대 18문, 총사업비는 2억6290만달러, 약 3665억원으로 늘어난다.

이번 계약은 미 육군이 추진하는 기동전술화포(Mobile Tactical Cannon·MTC) 사업의 시제품 제작과 운용평가를 위한 것이다. 미 육군은 기존 M777 155㎜ 견인포를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 있는 기동성과 생존성이 높은 차륜형 자주포를 확보하기 위해 사업을 추진해 왔다.

미 육군은 올해 초부터 복수의 글로벌 방산기업을 대상으로 납기와 성능, 가격, 생산능력, 현지화 비용 등을 검토한 뒤 한화디펜스USA를 시제품 공급 사업자로 선정했다. 전통적인 유럽 방산 강국과 미국·이스라엘 기업들이 경쟁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한국계 기업이 단독으로 시제품 계약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이번 계약은 미 육군의 최종 양산사업을 수주한 것이 아니라 시제품 제작과 평가 단계에 해당한다. K9MH 6문을 공급한 뒤 미 육군의 통신·지휘체계 연동, 미국산 탄약 호환성, 안전성, 신뢰성, 정비성과 실제 병사 운용평가를 통과해야 전력화와 양산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국산 자주포 500문 미국 수출’이나 ‘10조∼30조원 수주’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현재 확정된 것은 6문에 대한 계약이며 12문은 미 육군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다. 전체 양산 규모와 사업비는 향후 시험 결과와 미 국방예산, 도입 일정, 현지생산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계약이 주목받는 이유는 미국이 단순한 성능 시연을 넘어 실제 부대 운용을 전제로 한 시제품 단계에 K9MH를 진입시켰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방산시장인 미국에서 한국이 완성 무기체계의 공급 후보로 공식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있다.

K9MH는 기존 K9 계열의 포탑과 자동화 기술을 차륜형 플랫폼에 결합한 155㎜ 자주포다. 무한궤도로 움직이는 기존 K9과 달리 8×8 차륜형 차량을 기반으로 도로에서 빠르게 장거리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기존 궤도형 K9이 험지 돌파력과 방호력, 안정적인 사격 능력에 강점이 있다면 차륜형 K9MH는 전략적 이동성과 운영비, 신속한 전개에 초점을 맞춘다. 도로망을 이용해 작전지역 사이를 빠르게 이동하고, 사격 후 곧바로 자리를 벗어나는 ‘쏘고 이동하는’ 작전 수행에 적합하다.

현대 포병전에서는 사거리와 화력만큼 사격 후 얼마나 빨리 이탈할 수 있는지가 생존성을 좌우한다. 대포병레이더와 정찰 드론, 위성, 배회형 무기가 발달하면서 포탄을 발사한 위치가 빠르게 탐지되기 때문이다.

견인포는 비교적 가볍고 항공수송에 유리하지만 사격 준비와 철수에 다수의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차륜형 자주포는 차량에 포와 사격통제장비, 방호시설을 통합해 사격 준비와 이탈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포병의 기동성과 자동화, 분산 운용의 중요성이 확인되면서 차륜형 자주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미 육군이 자체 개발에 장기간 투자하는 방식보다 이미 운용 경험과 생산 기반을 갖춘 체계를 신속하게 도입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꾼 것도 K9MH에 기회가 됐다. K9 계열은 한국군의 대규모 운용 경험과 다수 국가의 수출 실적을 갖고 있어 완전히 새로운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것보다 기술과 일정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K9 자주포는 현재 한국을 비롯해 폴란드와 노르웨이, 핀란드, 에스토니아, 호주, 인도, 튀르키예 등 여러 국가에서 운용되거나 생산되고 있다. 국가별 요구에 맞춘 현지생산과 개량, 탄약운반차와 정비·교육을 결합한 패키지 수출 경험도 축적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이 기존 주문에 이어 추가 물량을 계약하면서 K9은 단순한 저가 대안이 아니라 장기간 운용할 수 있는 검증된 포병 플랫폼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 같은 생산 경험과 납기 대응력을 미국 사업에서도 주요 경쟁력으로 제시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시장에서는 성능만큼 현지생산과 공급망 구축 능력이 중요하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주요 무기체계를 자국 내에서 생산하고 부품과 정비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중요한 평가 요소로 본다. 해외에서 완제품을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는 방식만으로는 대규모 장기계약을 확보하기 어렵다.

한화디펜스USA는 이에 대응해 지난 4월 미국 앨라배마주 오펠리카의 유휴 공장을 3년간 임차하고 K9 계열 자주포의 통합·시험시설을 구축하기로 했다. 초기 단계에는 200만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현지 일자리 약 40개를 만드는 계획을 제시했다.

향후 사업이 양산 단계로 발전하면 미국 내 최종조립과 시험뿐 아니라 부품 생산과 공급망, 유지·보수·정비, 성능개량 기능까지 현지화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기업과의 부품 조달 및 생산 협력도 필수적이다.

이는 한국에서 완성한 무기를 미국에 그대로 판매하는 전통적인 수출과는 다른 방식이다. 한국이 개발한 무기체계를 바탕으로 미국에서 생산하고 현지 고용과 산업기반에 기여하는 ‘공동 산업화 모델’에 가깝다.

현지화는 미국 시장 진입을 위해 불가피하지만 국내 방산 생태계에는 새로운 과제를 제기한다. 생산 비중이 미국으로 이동하면 국내 중소 협력업체의 직접 수출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핵심 포탑과 자동화 기술, 사격통제, 주요 부품, 장기 성능개량 등 고부가가치 영역에서 국내 산업의 역할을 유지해야 한다.

국내 부품업체가 미국의 품질과 보안, 조달 기준을 충족해 현지 공급망에 함께 진입한다면 K9MH 사업의 효과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 곳을 넘어 국내 방산 생태계로 확산될 수 있다. 미국 사업 참여 경력은 다른 북미·유럽 사업에서도 중요한 신뢰 자산이 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방위사업청이 사업 초기부터 주요 현안을 공유하고 공동 대응한 점도 이번 수주의 배경으로 꼽힌다. 방산 수출은 기업의 제품 경쟁력만으로 성사되기 어렵다. 정부 간 안보협력과 수출승인, 기술보호, 금융, 군수지원, 현지 규제 대응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미국 수출은 다른 국가보다 높은 수준의 기술보안과 사이버보안, 군사표준, 회계·조달 절차를 요구한다. K9MH가 이 기준을 통과하면 한국 방산기업의 품질관리와 사업 수행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의 시장에서 검증됐다는 상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미 육군의 후속 양산 수요는 최대 498문 안팎으로 거론된다. 일부에서는 최종 양산사업 규모를 약 10조원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탄약운반차와 후속 군수지원, 미국 현지생산 비용, 장기 정비·성능개량까지 포함하면 20조∼30조원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숫자는 미 육군이 확정한 계약금액이 아니라 전체 예상 소요를 토대로 한 시장 추정치다. 실제 도입 물량은 시제품 평가와 예산 승인, 부대별 작전 요구, 생산단가에 따라 달라진다. 최종 양산사업이 여러 단계로 나뉘거나 도입 일정이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한화가 본계약으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할 첫 번째 관문은 미국산 탄약과의 호환성이다. 미 육군이 사용하는 다양한 155㎜ 포탄과 장약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목표한 사거리와 정확도, 연사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두 번째는 미국의 지휘통제·통신망과 사격지휘체계의 연동이다. 자주포가 우수한 화력을 갖고 있더라도 미군의 표적정보와 지휘체계 안에서 실시간으로 작동하지 못하면 실제 전력으로 채택되기 어렵다.

세 번째는 신뢰성과 정비성이다. 사막과 혹한,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장기간 운용하면서 고장을 최소화하고, 고장이 발생하더라도 현지 부대와 정비망을 통해 신속하게 복구할 수 있어야 한다. 부품 공급기간과 유지비용도 중요한 평가 대상이다.

네 번째는 현지 생산 확대 능력이다. 시제품 몇 문을 제작하는 것과 수백 문을 정해진 일정에 맞춰 양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미국 공급업체를 발굴하고 품질을 관리하며 숙련 인력을 확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K9MH가 미 육군의 평가를 통과해 양산계약으로 이어진다면 한국 방산 수출의 성격도 달라질 전망이다. 그동안 한국 방산은 가격 경쟁력과 빠른 납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유럽과 중동, 아시아 시장에서 성장했다.

미국 진출은 검증된 무기를 판매하는 단계를 넘어 세계 방산 표준과 공급망을 만드는 과정에 한국 기업이 참여한다는 의미가 있다. 미국에서 운용 실적을 확보하면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과 미국의 동맹국을 대상으로 한 후속 수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K9MH의 미국 진출은 한미 방산협력의 관계도 변화시킬 수 있다. 과거 한국이 미국에서 무기를 도입하고 기술을 배우는 위치였다면 이제는 한국이 개발하고 양산한 무기체계가 미국의 전력 공백과 방산 생산기반을 보완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이 6·25전쟁 당시 한국의 포병전력을 지원한 지 76년 만에 한국 기업이 미국 포병전력의 현대화에 참여한다는 상징성도 여기에 있다. 지원을 받던 국가가 공동 생산과 공급망을 통해 동맹국의 안보에 기여하는 국가로 성장한 것이다.

이번 계약은 한국 방위산업에 역사적인 문을 열었지만 진정한 승부는 이제부터다. 시제품 6문의 공급을 차질 없이 마치고 실제 병사들의 운용평가에서 성능과 신뢰성, 정비성, 경제성을 입증해야 한다.

K9MH가 세계 최대 방산시장에서 최종 양산계약까지 확보한다면 이번 성과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수주를 넘어 한국 제조업과 방위산업의 기술·품질·생산 역량이 미국의 핵심 전력체계로 인정받은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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