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0만 고객을 하나로…롯데, ‘데이터 기업’ 전환 승부수
- 엘포인트·엘페이 기반 계열사 공동 마케팅 확대…‘롯데 경제권’ 연결
- 구매·소셜 데이터 결합한 ‘AI 트윈 컨슈머’로 소비 이유와 맥락 분석
- 정교한 고객 경험 기대되지만 개인정보 보호·데이터 품질 관리가 성패 좌우
롯데가 4500만 엘포인트 회원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열사별 고객을 하나의 소비 생태계로 연결하는 통합 마케팅에 시동을 걸었다. 유통·식품·호텔·문화·금융 등 다양한 사업군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인공지능(AI)과 결합해 고객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고, 그룹 전체의 구매 여정을 확장하겠다는 전략이다.
롯데멤버스는 지난 2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 월드에서 그룹 마케팅·영업·전략 담당 임원과 팀장 등 1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26 롯데 마케팅 컨퍼런스’를 열었다. 올해 처음 개최된 이번 행사의 주제는 ‘리딩 더 사인, 리딩 더 마켓(Reading the Sign, Leading the Market)’이었다.
행사에서는 엘포인트 회원의 행동 패턴을 분석한 7가지 소비 트렌드와 미래 고객 예측, 상권 분석 등 계열사별 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인사이트가 공개됐다. 인구 변화가 소비시장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 미래 소비 예측 모델도 소개됐다.
핵심은 엘포인트와 엘페이를 중심으로 계열사별로 흩어진 고객 접점을 연결하는 것이다. 고객이 백화점에서 상품을 사고, 마트에서 식료품을 구매하고, 영화관과 호텔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분석하면 개별 계열사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웠던 소비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고객이 여행용품을 구매한 뒤 호텔이나 면세점, 항공 관련 서비스를 탐색한다면 여행 수요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계열사들이 이러한 신호를 공유하면 단순히 과거 구매 상품과 비슷한 제품을 추천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고객의 다음 소비 상황에 맞춘 서비스를 제안할 수 있다.
롯데가 추진하는 통합 마케팅은 계열사 간 할인쿠폰을 교차 발급하는 전통적인 제휴 마케팅과도 차이가 있다. 고객의 구매 시점과 장소, 상품군, 결제 방식, 이용 빈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어떤 고객에게 어떤 혜택을 언제 전달해야 반응 가능성이 높은지 판단하는 데이터 중심 체계에 가깝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롯데멤버스가 공개한 DSC(Digital Shared Center) 서비스다. DSC는 계열사 공동 마케팅과 데이터 분석을 비롯해 고객관계관리(CRM), 타깃팅, 고객 행동 분석, 캠페인 자동화 등을 지원한다. 자체적으로 대규모 데이터 조직을 갖추기 어려운 계열사도 공통 플랫폼을 통해 정교한 마케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다.
대형 제휴사뿐 아니라 소상공인과 외국인 고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외부 데이터를 결합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그룹 내부의 구매 기록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관심사와 사회적 유행, 소비자의 감정 변화까지 분석 범위를 넓히기 위해서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롯데멤버스가 바이브컴퍼니, 제로투원파트너스와 공동 개발 중인 ‘AI 트윈 컨슈머’다. 지난 7월 개발에 착수한 이 플랫폼은 엘포인트 회원의 가명 구매 데이터와 소셜 데이터를 결합해 고객의 소비 행동을 가상으로 재현하는 AI 페르소나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존 고객 분석이 ‘누가 무엇을 샀는가’를 분류하는 데 집중했다면 AI 트윈 컨슈머는 ‘왜 이 상품을 선택했는가’, ‘어떤 상황에서 구매 결정을 내렸는가’까지 추론하려는 시도다. 고객군별로 가상의 소비자 모델을 구축하면 신제품 출시 전에 반응을 예측하거나 광고 문구와 가격, 판매 채널에 따른 선호도 변화를 시험할 수 있다.
이 기술이 안정적으로 구현되면 기업은 설문조사나 시범 판매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여러 개의 마케팅 시안을 AI 소비자에게 먼저 제시한 뒤 반응 가능성이 높은 안을 추려 실제 캠페인에 적용하는 방식도 가능해진다. 지역별 점포 구성과 상품 발주량, 프로모션 시기를 결정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롯데의 강점은 고객 규모뿐 아니라 데이터의 다양성에 있다. 일반적인 온라인 플랫폼은 검색과 콘텐츠 이용 기록에 강하고 금융사는 결제 정보를 보유하지만, 롯데는 유통·식품·외식·문화·숙박·면세 등 일상 소비의 여러 영역에서 고객 접점을 확보하고 있다.
서로 다른 업종의 데이터를 연결하면 고객의 생활 변화를 입체적으로 포착할 수 있다. 다만 4500만이라는 회원 수가 곧바로 4500만명의 정확한 소비 성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휴면 회원과 이용 빈도가 낮은 고객이 포함될 수 있고, 엘포인트 밖에서 이뤄진 소비는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통합 데이터의 성과를 높이려면 회원 규모보다 데이터의 최신성과 정확성, 계열사별 분류 기준의 일관성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 같은 고객과 상품을 계열사마다 다른 방식으로 정의하면 데이터가 많아도 AI 분석 결과의 신뢰성이 떨어질 수 있다.
개인정보 보호와 고객 신뢰도 중요한 과제다. 가명정보를 활용하더라도 구매 기록과 위치, 관심사 등 여러 데이터를 지나치게 세밀하게 결합하면 특정 개인을 추정할 위험이 커질 수 있다. 고객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소비 성향을 분석하거나 민감한 상황을 추론한다면 편리한 추천이 감시받는다는 불쾌감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데이터 활용 목적과 범위, 보유 기간, 외부 업체와의 협업 기준을 명확하게 관리해야 한다. AI가 도출한 고객 성향을 그대로 사실로 취급하지 않고 오류와 편향을 점검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소비자에게는 맞춤형 마케팅의 설정과 거부 방법을 알기 쉽게 제공해야 한다.
계열사 간 이해관계 조정도 관건이다. 각 회사가 축적한 고객 데이터를 그룹 공동 자산으로 활용하려면 데이터 제공에 따른 효과와 비용을 공정하게 배분할 수 있어야 한다. 통합 마케팅이 특정 계열사의 매출 확대에만 기여한다고 인식되면 지속적인 데이터 협력이 어려워질 수 있다.
롯데멤버스의 역할도 포인트 운영사에서 그룹 데이터·마케팅 허브로 확대될 전망이다. 데이터를 모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 분석부터 캠페인 실행과 성과 측정까지 연결한다면 롯데멤버스는 그룹의 디지털 전략을 조정하는 핵심 조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이번 시도는 국내 대기업집단의 디지털 전환에도 시사점을 준다. 다양한 계열사를 보유한 기업은 방대한 데이터를 갖고 있지만, 회사별 시스템과 조직 장벽 때문에 이를 하나의 고객 경험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롯데의 실험이 성과를 낸다면 대기업의 경쟁 기준이 계열사 수나 매장 규모에서 데이터를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하느냐로 이동할 수 있다.
다만 최종 성과는 분석 모델의 정교함보다 고객이 체감하는 가치에 달려 있다. 기업이 더 많은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데이터를 활용하면 통합 마케팅은 피로도를 높이는 광고 자동화에 머물 수 있다. 반대로 불필요한 메시지를 줄이고 필요한 상품과 혜택을 적절한 순간에 제공한다면 데이터 통합은 고객 편의와 기업의 운영 효율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롯데가 구축하려는 것은 단순한 통합 고객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고객의 일상 속 소비가 계열사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롯데 경제권’이다. 4500만 회원이라는 규모를 실질적인 경쟁력으로 바꾸려면 데이터 표준화와 AI 기술뿐 아니라 개인정보 보호, 투명한 설명, 계열사 협력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박종남 롯데멤버스 대표는 “그룹 데이터 자산을 표준화하고 통합 마케팅 시너지를 높이는 것이 이번 행사의 목적”이라며 “데이터 허브를 넘어 마케팅 허브로 도약해 롯데 내 소비 여정을 확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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