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처/테크

트랙터 다음은 ‘로봇 농부’…대동·레인보우가 여는 농업 피지컬 AI

  • 양팔형 휴머노이드와 온실 자율주행 하체 결합한 ‘애그로이드’ 공동개발
  • 농림어가 고령인구 51%…예찰·적엽·수확·운반 자동화 필요성 커져
  • 완전한 인간형보다 농업 맞춤형 하이브리드가 현실적…가격·안전·데이터가 상용화 좌우

트랙터와 이앙기, 콤바인이 사람의 힘을 대신했다면 다음 단계의 농업기계는 사람의 눈과 판단, 손기술까지 대신한다. 인공지능(AI)이 작물 상태를 인식하고 수확 여부를 결정하면 로봇이 직접 이동해 잎을 따고 열매를 수확하는 ‘피지컬 AI’가 농업 현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국내 대표 농기계 기업 대동그룹과 휴머노이드 전문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가 공동개발에 나선 농업용 휴머노이드 로봇 ‘애그로이드’는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농업의 기계화가 특정 작업의 효율을 높이는 단계를 넘어 다양한 농작업을 스스로 판단하고 수행하는 범용 로봇으로 진화하고 있다.

대동그룹은 최근 레인보우로보틱스와 애그로이드 상용화를 위한 공동개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양사는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양팔형 휴머노이드 상부 플랫폼과 대동이 개발한 온실 특화 자율주행 하부 구동체를 결합한 1차 시제품을 완성하고 토마토 수확 등 실제 농작업 환경에서 성능을 시험하고 있다.

애그로이드는 대동이 2025년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공개한 딸기 수확 로봇을 발전시킨 모델이다. 기존 로봇이 딸기와 같은 특정 작물의 수확에 집중했다면 애그로이드는 온실 안을 스스로 이동하면서 예찰과 적엽, 수확, 운반 등 여러 작업을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동은 전체 개발을 총괄하면서 대동로보틱스·대동애그테크와 함께 자율주행 하부 플랫폼, 작업 경로 생성, 작물 인식과 수확 판단을 담당하는 농작업 AI를 개발한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수확용 로봇팔과 정밀제어 시스템, AI 제어 및 디지털트윈 연동 기술을 맡는다.

농업과 로봇 전문기업이 역할을 나눈 이유는 농작업이 로봇 하드웨어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로봇이 작물을 알아보는 것과 실제로 상품성이 있는 열매를 판단하고 손상 없이 따는 것은 다른 문제다. 품종과 생육 단계, 온도와 습도, 가지와 잎의 위치에 따라 같은 작업도 매번 달라진다.

농업용 로봇이 중요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농촌의 노동력 부족이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농림어업총조사 잠정 결과에 따르면 농림어가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비중은 51.0%로 전체 인구의 고령인구 비율 20.3%보다 30.7%포인트 높았다. 농림어가 인구의 중위연령도 65.3세에 달했다.

고령화는 단순히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농촌에 남은 고령 농업인에게 수확물 운반과 방제, 반복적인 허리 굽힘, 고온 온실 작업이 집중되면서 안전과 건강 문제도 커진다. 파종과 정식, 적엽, 수확처럼 일정 시기에 많은 사람이 필요한 작업은 인력을 제때 구하지 못하면 생산량과 상품성이 함께 떨어질 수 있다.

벼농사는 이앙기와 콤바인을 중심으로 기계화가 상당 부분 진행됐지만 과일과 채소, 시설원예 분야는 여전히 사람의 손에 의존하는 작업이 많다. 모양과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작물을 찾아내고, 줄기와 잎을 피해 접근한 뒤, 상처를 내지 않고 수확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 산업용 로봇은 공장에서 정해진 위치에 놓인 부품을 같은 순서로 반복 조립하는 데 강하다. 반면 농업 현장은 빛과 날씨, 토양, 작물의 성장 상태가 계속 달라지는 비정형 환경이다. 어제와 같은 위치에 오늘도 같은 크기의 열매가 있다는 보장이 없다.

이 때문에 농업 로봇에는 사전에 입력된 동작을 반복하는 자동화보다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상황에 맞춰 행동을 바꾸는 피지컬 AI가 필요하다. 카메라와 각종 센서가 작물과 장애물을 인식하고 AI가 작업 순서와 이동 경로를 판단하면 로봇의 팔과 구동체가 현실 공간에서 실제 작업을 수행하는 구조다.

농업에서 휴머노이드 기술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온실과 농기구, 수확 상자, 작업대는 대부분 사람의 신체와 행동을 기준으로 설계돼 있다. 두 팔을 가진 로봇은 한 손으로 가지를 잡고 다른 손으로 열매를 따거나, 수확물을 상자에 넣고 작업 도구를 바꾸는 등 사람이 해온 복합 동작을 재현하기에 유리하다.

특정 작업만 수행하는 전용 로봇은 속도와 비용에서 효율적이지만 작물이나 작업이 바뀔 때마다 별도의 기계를 도입해야 한다. 반면 양팔형 휴머노이드는 손끝에 장착하는 작업 도구인 엔드이펙터를 교체해 수확과 가지치기, 적엽, 검사, 운반 등 여러 업무에 대응할 수 있다.

다만 농업용 휴머노이드가 반드시 사람처럼 두 다리로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진흙과 경사, 배수로가 있는 노지에서는 다족 보행이나 궤도형 플랫폼이 적합할 수 있고, 통로가 비교적 평탄한 온실에서는 바퀴형 하부 구동체가 이동 속도와 안정성, 에너지 효율에서 유리하다.

애그로이드가 휴머노이드 상체와 자율주행 하체를 결합한 것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의 팔이 가진 범용성은 활용하되 이동에는 농업 환경에 적합한 전용 플랫폼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외형을 사람과 똑같이 만드는 것보다 농작업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는 기능적 휴머노이드에 가깝다.

이 같은 하이브리드 구조는 로봇의 무게중심을 낮추고 배터리 사용시간을 늘리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농가 입장에서는 사람처럼 걷는 모습보다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작물을 정확히 수확하고, 고장 없이 얼마나 오래 일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농업용 로봇은 노동력을 대신하는 기계인 동시에 농장 데이터를 수집하는 이동형 센서가 될 수 있다. 로봇이 온실을 오가며 작물의 크기와 색상, 병충해 징후, 수확량을 기록하면 농장 전체의 생육 상태를 지속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수집된 데이터는 다음 작업을 개선하는 학습자료가 된다. 어느 위치에서 작물이 잘 자랐는지, 어떤 환경에서 병충해가 발생했는지, 수확 시기를 어떻게 조정해야 상품성이 높아지는지를 AI가 분석할 수 있다. 로봇이 일할수록 농장 운영이 정교해지는 데이터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대동은 애그로이드를 2028년 전남 무안 일원에 조성될 국가 농업 AX 플랫폼의 ‘4세대 AI 온실’에 투입할 계획이다. 재배와 예찰, 수확, 운반, 유통을 AI와 로봇으로 연결한 환경에서 작업 데이터를 축적하고 성능과 경제성을 검증한 뒤 상용화를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정부도 농업 로봇을 미래 농업의 핵심기술로 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총 572억원 규모의 공동 연구개발사업을 추진하며 자율주행 농기계와 농작업 로봇, 드론, 지능형 의사결정 기술 등 18개 핵심과제를 개발하고 있다.

농식품부의 2026년 스마트농업 육성 시행계획에 따르면 국내 농업용 로봇 기술 수준은 최고 기술국인 미국의 84% 수준이며 기술격차는 약 2.5년으로 평가됐다. 제조업과 산업용 로봇에서는 높은 경쟁력을 갖춘 한국이지만 농업 현장 데이터와 작물별 작업기술에서는 아직 보완할 부분이 많다는 의미다.

농업 로봇의 상용화를 결정하는 것은 연구실에서의 성공적인 시연보다 농가의 수익성이다. 사람보다 천천히 수확하거나 잦은 오류로 작물을 손상시키면 높은 기술력에도 현장에서 선택받기 어렵다. 구입비뿐 아니라 유지·보수비와 배터리 교체, 소모품, 소프트웨어 사용료까지 고려해야 한다.

수확 성공률과 작업 속도, 작물 손상률, 하루 연속 가동시간, 장애 발생 후 복구시간 등이 핵심 성능지표가 돼야 한다. 온실의 높은 온도와 습도, 물과 흙, 농약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내구성도 필요하다.

농가 규모가 작은 국내 현실에서는 로봇을 개별 농가에 판매하는 방식만으로 시장을 확대하기 어렵다. 농협과 지방자치단체, 농기계 임대사업소가 공동으로 구입하거나 작업량에 따라 비용을 내는 서비스형 로봇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작물별로 필요한 엔드이펙터와 AI 모델을 표준화하고 여러 농가가 같은 로봇을 계절에 따라 공동 활용하면 가동률을 높일 수 있다. 봄에는 정식과 적엽, 여름에는 예찰과 방제, 가을에는 수확과 운반에 투입하는 방식이다. 하나의 로봇이 연중 여러 작업을 수행해야 경제성을 확보하기 쉽다.

안전기준도 중요하다. 날카로운 절단 도구를 장착한 로봇이 농업인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만큼 사람과의 거리와 충돌 가능성을 실시간으로 감지해야 한다. AI가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때 즉시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비상정지 장치와 원격관제 체계도 필요하다.

농업 로봇의 확산을 사람의 일자리를 없애는 문제로만 볼 필요는 없다. 가까운 미래에는 농업인이 농장을 떠나고 로봇만 남는 완전 무인화보다 사람이 여러 대의 로봇을 관리하면서 힘들고 위험하며 반복적인 작업을 나눠 맡기는 협업 형태가 현실적이다.

고령 농업인은 직접 무거운 수확물을 옮기는 대신 태블릿이나 음성으로 작업을 지시하고 로봇이 수행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청년 농업인은 재배 경험에만 의존하지 않고 로봇이 수집한 데이터를 활용해 생산계획과 품질관리를 정교하게 할 수 있다.

농업용 휴머노이드는 농촌의 부족한 사람 수를 단순히 채우는 대체 인력이 아니라 농업인의 경험을 데이터와 기술로 확장하는 도구가 돼야 한다. 숙련 농업인의 판단을 AI가 학습하고 로봇이 반복 수행할 수 있다면 세대교체 과정에서 사라질 수 있는 영농 노하우도 보존할 수 있다.

대동과 레인보우로보틱스의 협력은 전통 농기계 기업의 현장 경험과 영농 데이터, 로봇 기업의 양팔 제어기술을 결합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농업용 로봇은 좋은 팔과 다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어떤 열매를 언제 따야 하는지 알고, 농가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으로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비로소 ‘로봇 농부’가 된다.

트랙터가 농업인의 힘을 증폭시켰다면 피지컬 AI 로봇은 농업인의 눈과 손, 판단을 확장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애그로이드가 2028년 AI 온실에서 기술과 경제성을 입증한다면 대한민국 농업은 기계화와 스마트팜을 넘어 사람과 로봇이 함께 일하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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