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 울린 성덕대왕신종…천년의 소리로 미세 변화를 읽는다
- 국립경주박물관, 5개년 정기 타음조사 2년 차 진행
- 고유주파수·진동·맥놀이 측정…세기 달리해 장기 비교자료 확보
- 국민 771명과 조사 과정 공유…보존 기준·제한적 타종 매뉴얼 마련 추진
1200년 넘게 이어진 성덕대왕신종의 울림이 과학적 보존을 위한 측정 자료로 다시 기록됐다. 종소리를 감상하는 행사를 넘어 음향과 진동의 미세한 변화를 장기간 추적해 문화유산의 상태를 진단하고, 안전한 관리와 활용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조사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지난 14일부터 이틀간 박물관 내 성덕대왕신종 종각에서 ‘2026년 성덕대왕신종 타음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조사는 2025년부터 2029년까지 실시하는 5개년 정기 타음조사의 두 번째 일정이다.
성덕대왕신종은 신라 혜공왕 7년인 771년에 완성된 범종으로, 흔히 ‘에밀레종’으로도 알려져 있다. 성덕왕의 원찰인 봉덕사에 봉안된 뒤 영묘사와 경주읍성 남문 밖 종각을 거쳤다. 1915년 옛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으며, 1975년 국립경주박물관이 신축되면서 현재 위치에 자리 잡았다.
박물관은 종의 파손 가능성을 고려해 1992년 정기 타종을 중단했다. 이후 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물리적 특성을 확인하기 위해 1996년, 2001∼2003년, 2020∼2022년에 걸쳐 타음조사를 진행했다. 문화유산의 현재 상태를 한 번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같은 조건의 측정값을 축적해야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변화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올해는 모두 12차례 종을 울리며 고유주파수와 진동 특성, 맥놀이 등을 측정했다. 타종 세기를 달리해 충격 강도에 따라 소리와 진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기록했다. 맥놀이는 주파수가 미세하게 다른 소리가 겹치면서 음량이 주기적으로 커졌다 작아지는 현상으로, 종의 구조와 울림 상태를 살피는 주요 지표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첫 조사에서는 고유주파수가 과거 측정값과 비교해 ±0.1% 이내의 차이를 보였다. 박물관은 이를 기온과 주변 환경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범위로 분석했다. 맥놀이도 과거와 같은 패턴과 주기를 유지해 1996년 첫 진동·음향 조사 이후 구조적 안정성이 이어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장기적인 보존 상태를 확인하려면 동일한 기준에 따른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15일 열린 ‘성덕대왕신종 타음조사 공개회Ⅱ-모두를 위한 울림’에는 신종의 제작 연도에 맞춰 추첨으로 선정된 국민 771명이 참여했다. 공개회에는 6063명이 신청했다. 일반 관람객뿐 아니라 시각·청각장애인과 경주지역 이주배경학생, 관련 연구자 등이 함께했으며 보청기용 히어링 루프와 실시간 수어통역도 제공됐다. 조사와 타종 과정은 박물관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문화유산의 소리를 국민과 공유하는 일과 원형을 안전하게 보존하는 일은 때로 상충할 수 있다. 타종은 종의 역사적 기능을 경험하게 하지만 반복적인 충격은 보존 상태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어 조사 결과에 근거한 제한과 관리가 필요하다. 이번 5개년 조사의 의미도 감상과 보존 가운데 어느 한쪽을 택하기보다 과학적 자료를 토대로 허용 가능한 범위를 찾는 데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전문가들과 조사 방법과 주기, 적정 타종 강도, 상태 점검 기준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보존관리 시스템과 타종 매뉴얼도 마련한다. 성덕대왕신종의 울림은 과거를 재현하는 소리인 동시에 미래 세대에 문화유산을 온전히 넘기기 위한 과학적 기록으로 축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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