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에서 장바구니·항공권으로…K컬처 ‘40조 경제효과’의 조건
- 틱톡·커니, 2030년 직접 소비 13조9200억원·생산유발 26조7200억원 전망
- K뷰티는 소비 규모, K푸드는 산업 파급력, K관광은 성장성과 고용에서 두각
- 조회수를 실제 구매·방문·재소비로 연결할 유통·결제·현지화 생태계가 관건
짧은 영상 한 편이 화장품 구매와 한국 음식 주문, 항공권 예약으로 이어지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과거 K팝과 드라마를 중심으로 확산하던 한류가 이제는 뷰티·푸드·패션·관광 등 실물경제 전반의 수요를 만들어내는 단계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틱톡과 글로벌 컨설팅 기업 커니가 26일 발표한 공동 보고서는 이러한 변화를 수치로 제시했다. 틱톡이 K컬처 확산에 기여하는 경제적 파급효과가 올해 31조3700억원에서 2030년 40조6400억원으로 약 29%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번 조사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일본,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10개국의 16~49세 소비자 33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분석 분야는 K팝, K미디어·지식재산권(IP), K뷰티, K푸드, K패션, K관광 등 6개다.
다만 ‘40조원’을 틱톡에서 발생하는 상품 매출이나 K컬처의 전체 시장 규모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2030년 전망치 40조6400억원은 해외 소비자의 직접 지출 13조9200억원과 해당 소비가 국내 산업에 미치는 생산유발효과 26조7200억원을 합한 경제적 파급효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틱톡의 영향을 받은 K컬처 관련 직접 소비는 올해 10조7500억원에서 2030년 13조9200억원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기존 소비자의 추가 지출과 아직 관련 상품을 구매하지 않은 이용자의 신규 소비가 각각 1조원대 중반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같은 소비가 국내 생산과 일자리로 연결될 경우 2030년 고용유발효과는 11만8865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K컬처가 콘텐츠 제작자와 연예산업에 머물지 않고 제조업과 유통, 숙박, 외식, 운송, 지역 서비스업의 일자리까지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다.
산업별로는 K뷰티의 직접 경제효과가 2030년 3조2700억원으로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됐다. 화장품은 사용 전후의 변화와 색상, 질감, 사용법을 짧은 영상으로 보여주기 쉽고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체험할 수 있어 숏폼 콘텐츠와 궁합이 좋은 분야다.
국내 화장품 업계가 빠른 상품기획과 제조자개발생산(ODM), 온라인 유통,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콘텐츠 노출을 실제 구매로 전환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한다. 해외 이용자가 영상을 본 직후 현지 온라인몰이나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찾을 수 있는 유통망이 이미 상당 부분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K관광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로 꼽혔다. 직접 경제효과가 올해 약 1조7000억원에서 2030년 2조5000억원 이상으로 44% 증가하고, 고용유발 규모도 3만384명으로 6개 분야 가운데 가장 클 것으로 전망됐다.
관광은 콘텐츠가 실제 이동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드라마 촬영지와 아이돌이 방문한 식당, 지역 축제, 골목과 전통시장 등이 짧은 영상으로 소개되면 이용자는 해당 장소를 저장하고 여행 일정에 포함한다. 숏폼이 단순 홍보물이 아니라 새로운 여행 수요를 만드는 검색·추천 도구로 작동하는 셈이다.
생산유발효과가 가장 큰 분야는 K푸드로, 2030년 6조28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 식품 소비가 농축산물과 원료, 포장재, 물류, 냉동·냉장 설비, 외식업 등 폭넓은 공급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숏폼에서 유행한 매운 라면이나 냉동김밥, 소스, 간편식이 해외 유통망에 입점하면 수출기업뿐 아니라 원료와 포장, 물류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에도 주문이 전달된다. K푸드의 경제적 가치는 완제품 판매액보다 국내 공급망 전체에 미치는 연쇄효과에서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설문 결과도 콘텐츠 노출과 소비 사이의 높은 연관성을 보여준다. 응답자의 88.7%는 틱톡이 K컬처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답했고, 69.5%는 틱톡 이용 후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선호가 높아졌다고 응답했다.
61.4%는 K컬처 콘텐츠에 참여한 경험이 소비 의향을 높였다고 답했으며, 55.7%는 콘텐츠를 본 뒤 실제로 관련 상품이나 서비스에 지출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플랫폼 이용자의 절반 이상이 시청 이후 구매나 방문으로 이동했다는 조사 결과다.
숏폼 플랫폼의 힘은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에게 콘텐츠를 보여주는 데만 있지 않다. 이용자가 영상을 따라 만들고 댓글을 남기며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는 과정에서 콘텐츠 소비자가 자발적인 홍보자이자 판매자로 전환된다는 점이 핵심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대규모 광고비를 먼저 투입하지 않고도 해외 시장의 반응을 시험할 수 있다. 특정 국가에서 제품이나 장소를 소개한 영상의 조회와 검색이 급증하면 이를 바탕으로 현지 판매 가능성을 가늠하고 유통·마케팅 전략을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관심이 자동으로 매출과 일자리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영상에서 제품을 발견한 이용자가 신뢰할 만한 상품 정보를 확인하고, 현지 언어로 된 구매처에서 결제한 뒤 합리적인 배송비로 제품을 받아볼 수 있어야 한다.
관광 역시 영상을 본 이용자가 항공권과 숙소, 교통편, 체험 프로그램을 한 번에 검색하고 예약할 수 있어야 실제 방문으로 연결된다. 영상 속 장소가 수도권이나 유명 관광지에만 집중될 경우 지역경제로의 파급효과도 제한될 수 있다.
따라서 K컬처 산업의 다음 경쟁력은 콘텐츠 제작량보다 ‘소비 전환 경로’를 얼마나 촘촘하게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영상 시청에서 검색과 비교, 구매·예약, 배송, 사후서비스, 재구매로 이어지는 연결 구조가 필요하다.
틱톡이 콘텐츠와 구매를 직접 연결하는 틱톡샵의 국내 출시를 준비하고 있지만 올해는 서비스를 시작하지 않기로 한 점도 이러한 과제를 보여준다. 플랫폼 안에서 관심과 결제가 바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국내 기업이 해외 쇼핑몰과 현지 유통망, 관광 예약 플랫폼을 별도로 확보해야 한다.
중소기업에는 이 과정이 더 큰 장벽이 될 수 있다. 제품 경쟁력은 있어도 다국어 상세페이지와 현지 인증, 통관, 물류, 고객응대 역량이 부족하면 갑작스러운 관심을 일시적인 유행으로 소진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수출 지원기관은 조회수가 높은 콘텐츠를 추가로 만드는 데 집중하기보다 해외에서 반응이 확인된 중소기업 제품이 실제 판매로 이어지도록 인증과 물류, 현지 유통, 번역, 지식재산권 보호를 묶어 지원할 필요가 있다.
관광 분야에서는 숏폼 데이터를 활용해 관심이 높아진 지역과 콘텐츠를 파악하고 이를 지역 숙박·교통·상권과 연결해야 한다. 특정 장소에 방문객이 과도하게 몰리면서 주민 생활과 환경을 훼손하지 않도록 수요를 인근 지역으로 분산하는 설계도 요구된다.
창작자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도 중요하다. 틱톡은 올해 한국 콘텐츠 생태계에 5000만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크리에이터 보상 규모를 확대했다. 이후 하루 평균 1분 이상 콘텐츠 수는 7만5000개에서 14만3000개로 90% 이상 늘었고, 월간 활동 크리에이터도 140만명에서 148만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콘텐츠 수의 증가만으로 건강한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창작자가 안정적인 보상을 받고 자신의 콘텐츠와 캐릭터, 음악, 영상에 대한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플랫폼 보상 기준과 광고 계약의 투명성, 무단 복제 대응, 해외 수익 정산 체계도 함께 정비해야 한다.
특정 플랫폼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추천 알고리즘과 보상 정책이 바뀌거나 국가별 규제가 강화되면 한순간에 콘텐츠 노출과 판매 경로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K컬처 기업과 창작자는 틱톡을 중요한 발견 채널로 활용하되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글로벌 온라인몰, 자체 웹사이트와 고객관리 채널로 접점을 분산해야 한다. 플랫폼에서 확보한 관심을 기업과 창작자가 장기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팬과 고객 관계로 전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번 보고서는 틱톡과 커니가 공동으로 진행한 설문과 경제효과 추산이라는 점에서 결과를 해석할 때 일정한 주의도 요구된다. 이용자의 응답과 산업연관 분석을 바탕으로 한 전망치인 만큼 숏폼 이용과 구매 사이의 모든 인과관계를 확정적으로 증명하는 통계로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K컬처의 경제적 가치가 음원과 방송 판권, 공연 매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방향성은 분명하다. 콘텐츠에서 출발한 관심이 화장품과 식품, 패션, 관광으로 확산하면서 K컬처가 한국 상품과 서비스를 세계 소비자에게 발견시키는 산업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다.
2030년 40조6400억원의 경제효과는 저절로 실현되는 미래가 아니다. 세계인의 관심을 실제 구매와 방문, 재소비로 연결할 유통·결제·물류·관광·창작자 생태계를 갖췄을 때 비로소 현실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다.
K컬처의 다음 과제는 더 많은 조회수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짧은 영상에서 시작된 호기심이 국내 기업의 매출과 일자리, 지역경제의 성장으로 오래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 진짜 승부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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