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체험에서 청년 창업까지…대한민국 ‘AI 인재 성장사다리’ 놓는다
- KT·서울시 캠프 등 초중등 AI 체험·윤리교육 확산…AI 중점학교도 약 1000곳 운영
- 대학 기본교육·37개교 부트캠프 통해 전공 경계 넘는 산업 융합인재 육성
- 청년 4000명 직무교육·이어드림스쿨 등 취업·창업 연계…단계별 연결은 과제
초등학생이 인공지능(AI)으로 로봇팔을 움직여 그림을 그리고 블록 코딩으로 AI의 원리를 배운다. 대학생은 기업과 함께 제조·의료·콘텐츠 분야의 AI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대학 밖 청년은 단기 집중교육을 거쳐 스타트업 취업이나 창업에 도전한다. 소수 연구자와 개발자 양성에 집중했던 국내 AI 교육이 어린이의 기초 소양부터 대학의 융합교육, 청년의 직무 전환과 창업까지 이어지는 다층적인 인재 육성체계로 확장되고 있다.
KT는 지난 22일 서울시,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 서울도봉경찰서와 함께 서울 지역 초등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AI 미래 캠프’를 열었다. 학생들은 AI 체험교육관과 로봇 전시를 둘러보고 블록 코딩, 로봇팔 미술, AI 활용 범죄 예방교육 등 기술과 윤리를 아우르는 5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번 캠프는 하루 동안 진행된 체험행사지만 최근 AI 교육이 향하는 방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학생들에게 전문적인 프로그래밍 기술을 먼저 요구하기보다 AI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고, 생활 속에서 어떻게 사용되며, 잘못 활용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함께 경험하도록 구성했다.
KT는 2023년부터 교육청·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초·중학생 대상 AI·디지털 윤리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누적 약 17만명이 관련 교육에 참여했다. 도서산간 지역에는 이동식 체험교육관 ‘AI 스테이션’과 찾아가는 교육을 제공해 지역에 따른 교육 접근성 격차를 줄이는 데도 나서고 있다.
학교 안의 AI 교육 기반도 넓어지고 있다. 교육부는 2025년 730개교에서 운영했던 AI 정보교육 중심학교를 올해 약 1000개의 ‘AI 중점학교’로 확대·개편했다. 정규수업과 창의적 체험활동, 동아리, 진로교육 등을 통해 학생들이 AI의 기초 원리를 이해하고 다양한 교과에서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초·중등 단계의 목표가 모든 학생에게 기본적인 AI 소양을 갖추게 하는 것이라면 대학에서는 AI를 전공과 산업에 결합하는 교육이 본격화하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 대학 20곳을 선정해 전공과 관계없이 모든 대학생이 배울 수 있는 AI 기본교육과정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대학 교육체계를 AI 중심으로 개편하고 AI 전문인재와 AI 전환(AX) 융합인재를 양성하는 ‘AI 중심대학’ 사업을 추진 중이다.
대학과 기업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단기 집중교육도 빠르게 늘고 있다. 올해 첨단산업 인재양성 부트캠프의 AI 분야에는 전국 37개 대학이 새로 선정됐다. 서울 3곳, 경기·인천 4곳을 제외한 30개 대학이 비수도권에 배치돼 지역 산업과 연계한 AI 인재 양성을 추진한다.
AI 분야가 아닌 반도체·이차전지·바이오·미래차·로봇 등의 부트캠프에서도 10개 대학이 별도의 AI 융합과정을 운영한다. 이는 AI 교육이 컴퓨터공학과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각 산업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보편적인 직무역량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제조업 전공자는 AI를 활용해 불량을 예측하고 생산설비를 최적화하는 법을 배우고, 의료 분야 학생은 영상·임상 데이터를 분석하는 능력을 익힐 수 있다. 콘텐츠 전공자는 생성형 AI로 영상과 이미지, 음악을 제작하고 지식재산권과 창작윤리를 함께 학습한다. 앞으로 산업계에서 요구하는 인재도 AI 모델을 처음부터 개발하는 사람뿐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 적합한 AI를 선택하고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융합형 인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대학에 재학하지 않는 청년을 위한 교육도 확대되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 ‘청년도약 인재양성 부트캠프’ 운영대학 40곳을 선정해 일자리 밖 청년 약 4000명을 지원한다. 대학과 기업이 수준별 단기 집중교육과 경력 설계, 현장실습, 취업 지원을 함께 제공하는 사업이다.
사업은 첨단산업 분야의 전문성을 높이는 ‘첨단인재형’과 인문·사회·예술·서비스 분야에 AI를 결합하는 ‘실전인재형’으로 나뉜다. 대학이 보유한 교육시설과 교수진, 기업 네트워크를 재학생뿐 아니라 미취업 청년에게 개방한다는 점에서 기존 대학 교육의 범위를 넓히는 시도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이어드림스쿨’도 학력과 전공에 관계없이 39세 이하 미취업 청년을 AI 실무인재로 육성한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100명 늘어난 300명을 선발하고 교육 지역을 서울·원주·대구·전주·천안 등 5개 권역으로 확대했다.
비전공자와 초급자를 위한 7개월 기본반뿐 아니라 AI 전공자와 관련 경력자를 위한 3개월 심화반을 운영한다. 국내외 AI 경진대회, 스타트업 현업 프로젝트, 인턴십, 취업·창업 연계까지 제공해 교육 수료를 실제 사회 진출로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서울시는 교육 기회뿐 아니라 AI 도구에 대한 접근권까지 청년정책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서울 청년 AI 사다리’를 통해 청년들에게 생성형 AI 이용권을 지원하고, 생활권 주변에 AI 라운지를 조성해 바이브 코딩과 AI 영상 제작 등의 교육을 제공할 계획이다. 경제적 여건에 따라 유료 AI 서비스의 활용 경험이 달라지면 취업 준비와 창업, 학습 역량의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가 이달 출범시킨 ‘모두의 AI 성장사다리’도 비슷한 방향을 지향한다. 국민이 AI를 처음 배우는 ‘배움터’, 아이디어를 서비스로 구현하는 ‘실험실’, 개발 결과를 공유하고 창업으로 연결하는 ‘라운지’를 연계해 학습부터 개발·실증·창업까지 지원하는 구조다. 초보자가 교육을 받은 뒤 실제 결과물을 만들고 사업에 도전할 수 있는 후속 경로를 제공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종합하면 국내 AI 인재정책에는 세 가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우선 인재의 범위가 소수의 석·박사급 연구자에서 학생과 비전공자, 구직자, 창작자, 예비 창업가로 넓어지고 있다. 교육 내용은 알고리즘과 프로그래밍 중심에서 AI 활용·윤리·산업 융합·문제해결로 확장되고 있다. 교육의 목표도 과정 이수와 자격 취득을 넘어 현장 프로젝트, 취업, 서비스 출시와 창업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다만 여러 교육사업이 하나의 성장경로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별도의 점검이 필요하다. 초등학생이 캠프에서 얻은 관심을 중·고교에서 발전시키고 대학의 전공·융합교육과 청년 취업·창업 과정으로 연결하려면 단계별 교육과정과 역량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지금처럼 부처와 지자체, 기업, 대학이 각각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교육 내용이 중복되거나 이전 단계에서 습득한 역량이 다음 교육에서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AI 기술의 빠른 변화도 과제다. 특정 생성형 AI 서비스의 사용법만 가르치면 해당 서비스가 바뀌거나 사라졌을 때 교육 효과도 함께 낮아진다. 특정 제품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능력보다 문제를 정의하고 적절한 도구를 선택하며, 결과를 검증하고 개선하는 역량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해야 한다.
교육 성과를 참가자와 수료자 수로만 평가하는 방식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학생이 어떤 프로젝트를 완성했는지, 대학생이 전공 문제를 AI로 해결할 수 있게 됐는지, 청년 교육생이 어느 산업에 취업하거나 어떤 서비스를 창업했는지를 장기적으로 추적해야 한다. 기업이 교육과정 설계와 평가에 참여하고 우수 프로젝트를 채용·투자와 연결하는 구조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역 간 격차를 줄이는 일도 중요하다. 온라인 강의만 제공하는 것으로는 수도권의 기업 프로젝트와 전문 강사, 동료 집단, 고성능 컴퓨팅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대체하기 어렵다. 지역 대학과 과학관, 도서관, 창업지원기관을 AI 교육거점으로 연결하고 지역 주력산업의 데이터를 활용한 프로젝트를 운영해야 교육과 지역 일자리가 함께 성장할 수 있다.
향후 국가 AI 인재체계는 모든 국민이 갖춰야 할 기초 소양, 일상과 업무에 AI를 활용하는 실무역량, 전공·산업과 결합하는 융합역량, 모델과 시스템을 개발하는 전문역량, 기술을 제품과 사업으로 전환하는 창업역량으로 구분해 설계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기초 단계에서 출발하되 적성과 목표에 따라 다음 단계로 이동할 수 있어야 진정한 성장사다리가 된다.
대한민국의 AI 경쟁력은 최고 수준의 연구자 몇 명을 확보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어린이가 AI를 처음 접하는 순간부터 대학생이 전공에 AI를 결합하고, 청년이 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해 취업과 창업에 이르는 경로가 끊김 없이 이어져야 한다. 이제 AI 인재정책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교육과정을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배움이 실제 역량과 일자리, 산업혁신으로 연결되는 사다리를 얼마나 촘촘하게 구축했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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