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보고, 판단하고, 관리한다…밀레가 그린 ‘가사 노동의 종말’
- IFA 2026서 AI 식기세척기·쿠킹 어시스턴트·차세대 세탁·청소 솔루션 공개
- 사용자가 일일이 설정하던 가전에서 주변 상태를 인식하고 결정하는 가전으로 진화
- 반복 작업은 줄어들지만 제품 간 연결성과 개인정보 보호, 가격 경쟁력은 과제
식기의 종류와 적재 상태를 살펴 세척 방법을 결정하고, 만들고 싶은 요리를 말하면 조리 과정을 안내한 뒤 오븐 설정까지 알아서 전송한다. 세탁기는 옷감에 적합한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청소기는 먼지통과 브러시, 물걸레 롤러를 스스로 관리한다.
인공지능(AI)이 가전에 더해지면서 사람이 가전제품을 조작하던 방식에서 가전이 집안의 상황을 보고 판단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독일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 밀레는 이러한 변화를 ‘가사 노동의 종말’이라는 선언적인 문구로 압축해 제시했다.
밀레는 오는 9월 4일부터 8일까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6’에서 ‘미래는 지금이다(The Future is Now)’를 주제로 AI와 자동화 기술을 적용한 신제품과 미래형 생활 솔루션을 공개한다.
밀레가 이번 전시에서 내건 슬로건은 ‘가사 노동의 종말이 보인다(The end of the housework is in sight)’다. 청소와 세탁, 설거지, 요리를 완전히 없앤다는 의미라기보다 사용자가 가전 상태를 확인하고 프로그램을 선택하며 제품까지 관리해야 했던 반복적인 부담을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대표 제품은 밀레 식기세척기 최초로 AI 카메라를 탑재한 ‘G8’ 시리즈다. 식기세척기 내부의 카메라가 그릇의 종류와 적재 상태를 인식한 뒤 상황에 적합한 세척 옵션을 자동으로 선택한다. 사용자가 식기의 양과 오염 정도를 살펴 프로그램을 결정하던 과정 일부를 가전이 대신하는 것이다.
건조하기 어려운 플라스틱 식기까지 효과적으로 말리는 ‘엑설런트드라이’ 기능도 적용됐다. 에코 프로그램에서는 유럽 에너지효율등급 A 기준보다 최대 25% 적은 에너지를 사용해 편의성과 에너지 절감을 함께 추구한다.
주방에서는 AI 기반 쿠킹 어시스턴트 ‘컬리너리코치’가 공개된다. 밀레 앱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요리를 선택하면 적합한 조리 방법을 추천하고 재료 준비부터 완성까지 과정을 단계별로 안내한다.
컬리너리코치는 안내에 그치지 않고 요리에 필요한 프로그램과 온도, 시간 등의 설정값을 연결된 오븐으로 전송한다. 사용자는 복잡한 메뉴와 기능을 직접 찾아 설정하지 않아도 된다. 조리법을 알려주는 기존 레시피 앱에서 가전의 실제 작동까지 연결하는 실행형 서비스로 발전한 셈이다.

프리미엄 ‘KM 8000’ 인덕션에는 조리용기와 쿡탑을 연동하는 ‘엠센스’ 스마트 쿠킹 시스템이 적용된다. 조리 상태에 따라 출력을 자동으로 조절해 불의 세기를 계속 확인해야 하는 부담을 줄인다. 인덕션과 환기 기능을 결합한 2-in-1 제품과 매트 질감의 다운드래프트 후드도 함께 선보인다.
세탁과 건조 분야에서는 최대 11㎏ 용량의 ‘W2’ 세탁기와 ‘T2’ 의류건조기가 공개된다. 밀레는 여기에 AI와 지능형 센서를 결합해 세탁물을 인식하고 알맞은 프로그램과 설정을 자동으로 선택하는 미래형 세탁 콘셉트도 제시할 예정이다.
내년 청소기 출시 100주년을 앞두고 공개하는 무선청소기 ‘듀오플렉스 HX2’는 바닥 청소뿐 아니라 제품 관리까지 자동화한 것이 특징이다. 새로 개발한 ‘아쿠아터보’ 물걸레 도구를 이용해 마른 먼지와 젖은 오염물을 한 번에 제거한다.
자동 세척 스테이션과 오토컷, 오토클린 기능은 청소가 끝난 뒤 이어지는 번거로운 작업을 줄인다. 먼지통을 비우고 브러시에 감긴 머리카락을 제거하며 오염된 물걸레 롤러를 세척하는 과정까지 하나의 시스템에 담았다. 청소 행위보다 청소기 자체를 관리하는 데 드는 수고를 줄이려는 접근이다.
밀레는 가전의 기능뿐 아니라 변화하는 주거 형태에도 주목했다. 가구·부품 기업 헤티히와 협업한 ‘밀레 컴팩트 리빙’ 키친 유닛을 통해 제한된 공간을 조리와 식사, 업무 등 여러 용도로 전환하는 주거 솔루션을 선보인다.
이는 AI 가전의 경쟁이 개별 제품의 성능을 높이는 데서 공간 전체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향으로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1인 가구 증가와 주거 공간 축소, 재택근무 확산으로 하나의 공간이 시간대에 따라 주방과 식당, 사무실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전업계의 AI도 음성으로 전원을 켜거나 스마트폰으로 원격 조작하는 초기 단계를 벗어나고 있다. 카메라와 센서로 현재 상태를 인식하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적의 방법을 판단한 뒤, 다른 가전과 연결해 실제 작업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전제품의 경쟁력은 모터와 세척력, 내구성 같은 하드웨어 성능뿐 아니라 AI 알고리즘과 센서 정확도, 앱 사용성, 제품 간 연결성으로 확대된다. 가전을 구입한 이후에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데이터 학습을 통해 기능이 개선되는 서비스형 제품의 성격도 강해질 전망이다.
다만 ‘가사 노동의 종말’이 곧 집안일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식기를 식기세척기에 넣고 꺼내야 하며, 요리를 위한 재료를 준비하고 세탁물을 정리하는 일도 여전히 남는다. 현재의 AI 가전은 가사 노동 전체를 대신하기보다 프로그램 선택과 상태 확인, 제품 관리처럼 반복되는 판단과 부수 작업을 줄이는 단계에 가깝다.
카메라와 센서가 집안과 사용 습관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만큼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도 중요하다. AI 기능이 클라우드 연결에 의존할 경우 인터넷 장애나 서비스 정책 변경에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서로 다른 제조사의 가전을 하나의 서비스로 연결할 수 있는 호환성도 미래형 주거 솔루션 확산의 관건이다.
높은 가격 역시 넘어야 할 과제다. 첨단 AI 기능이 프리미엄 제품에만 적용되면 가사 부담을 줄이는 기술의 혜택이 일부 소비자에게 제한될 수 있다. 소비자가 실제로 자주 사용하는 기능인지, 절약되는 시간과 에너지가 추가 비용에 상응하는지도 시장에서 검증돼야 한다.
밀레는 기술 자체보다 고객의 삶을 체감할 수 있을 만큼 편리하게 만들 때 혁신의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AI가 사람에게 더 많은 기능을 학습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전이 스스로 상황을 이해해 사용자의 개입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IFA 2026에서 밀레가 제시할 미래의 집은 로봇 한 대가 모든 집안일을 대신하는 모습과는 다르다. 식기세척기와 오븐, 세탁기, 청소기 등 각각의 가전이 작은 판단과 관리 업무를 나눠 맡아 사람의 시간을 조금씩 돌려주는 공간에 가깝다.
가사 노동의 종말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기보다 수많은 반복 작업이 하나씩 자동화되면서 서서히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밀레의 신제품들은 가전이 단순한 도구에서 집안일을 함께 판단하고 수행하는 생활 파트너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좋은 미래를 위한 콘텐츠 플랫폼 – <굿퓨처데일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