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화보다 47㎏ 감량…애스턴마틴, 727마력 ‘S 삼각편대’로 한국 공략
- DBX S·DB12 S·밴티지 S 국내 동시 공개…V8 트윈터보로 680~727마력
- 카본 루프·마그네슘 휠·섀시 재설계로 출력보다 ‘반응성’ 강화
- 1억5000만원 이상 수입차 판매 28.6% 증가…차량 넘어 오너 경험으로 승부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앞세워 성능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영국 스포츠카 브랜드 애스턴마틴은 무게를 덜고 내연기관의 반응성을 높이는 전략을 선택했다. 전동화보다 경량화와 섀시 조율에 집중한 고성능 ‘S-레인지’ 3종을 한국에 한꺼번에 투입하며 국내 럭셔리 퍼포먼스 시장 공략을 강화한다.
애스턴마틴과 공식 수입사 브리타니아 오토는 24일 서울 강남구 애스턴마틴 서울 전시장에서 고성능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DBX S’, 슈퍼 투어러 ‘DB12 S’, 스포츠카 ‘밴티지 S’를 국내에 공개했다.
S-레인지는 기존 모델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엔진 출력과 가속 반응, 차체 제어, 공력 성능을 종합적으로 끌어올린 고성능 라인업이다. 단순히 마력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차량 무게를 줄이고 운전자와 자동차의 연결감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라인업에서 가장 높은 출력을 내는 모델은 DBX S다. 4.0리터 V8 트윈터보 엔진에 애스턴마틴 하이퍼카 ‘발할라’에서 파생된 터보 기술을 적용해 최고출력 727마력(PS), 최대토크 900Nm를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3.3초 만에 도달하며 최고속도는 시속 310㎞다. 순수 내연기관 SUV 가운데 세계 최고 수준의 출력을 갖췄다.
DBX S의 성능을 뒷받침하는 핵심은 경량화다. 카본 파이버 루프와 23인치 마그네슘 휠, 경량 그릴 등을 선택하면 기존 DBX707보다 차량 무게를 최대 47㎏ 줄일 수 있다. 특히 마그네슘 휠은 노면 움직임의 영향을 직접 받는 현가하질량을 최대 19㎏ 낮춰 조향 응답성과 차체 민첩성을 높인다.
가변식 사륜구동 시스템은 주행 상황에 따라 구동력을 최대 100%까지 뒷바퀴로 보낼 수 있다. 강력한 직선 가속 성능과 함께 후륜구동 스포츠카에 가까운 역동적인 주행 감각을 구현하려는 설계다.
장거리 주행 성능과 스포츠카의 민첩성을 결합한 DB12 S는 4.0리터 V8 트윈터보 엔진으로 최고출력 700마력, 최대토크 800Nm를 낸다. 시속 100㎞까지 3.5초가 걸리며 최고속도는 시속 325㎞다.
DB12 S는 ZF 8단 자동변속기의 변속 시간을 기존 모델보다 43% 단축한 0.12초로 줄였다.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를 기본 적용해 일반 스틸 브레이크보다 무게를 27㎏ 덜어냈고, 차량 전체로는 최대 38㎏의 경량화를 구현했다.
전면 스플리터와 보닛 루버, 고정식 리어 스포일러, 리어 디퓨저 등은 외관을 공격적으로 보이게 하는 장식에 머물지 않는다. 차체 주변의 공기 흐름을 조절해 고속 주행 안정성과 제동 성능을 높이는 기능적 요소다.
밴티지 S는 최고출력 680마력과 최대토크 800Nm를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3.4초 만에 가속하며 최고속도는 시속 325㎞다.
밴티지 S의 차별점은 출력보다 핸들링에 있다. 리어 서브프레임을 고무 부싱을 거치지 않고 차체에 직접 연결해 운전자의 조향 입력이 차량에 더욱 빠르게 전달되도록 했다. 빌슈타인 DTX 어댑티브 댐퍼와 파워트레인 마운트, 제어 소프트웨어도 다시 조율했다.
후면 스포일러는 최고속도에서 44㎏의 추가 다운포스를 만들어낸다. 가속 페달의 저항과 반응도 주행 모드에 따라 다르게 설정해 운전자가 차량의 움직임을 보다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세 모델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더 큰 동력원’보다 ‘덜어낸 무게’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추가해 출력을 높이는 방식 대신 V8 엔진을 유지하면서 소재와 차체 구조, 소프트웨어를 정교하게 다듬는 전략이다.
닐 휴스 애스턴마틴 제품총괄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하면 차량 중량이 늘어나 순수한 주행 성능 측면에서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전동화가 현재 회사의 우선순위는 아니라고 밝혔다. 애스턴마틴 고객 가운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원하는 수요가 아직 크지 않다는 판단도 제시했다.
이러한 선택은 완성차 산업 전체의 전동화 흐름을 거부한다기보다 초고가 스포츠카 시장의 틈새 수요를 겨냥한 차별화 전략으로 풀이된다. 효율성과 편의성보다 엔진의 소리와 즉각적인 반응, 기계적 감각을 중시하는 고객에게 내연기관 자체가 희소한 상품 가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 전략을 시험할 주요 시장으로 꼽힌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억5000만원이 넘는 수입차 판매량은 3만6477대로 전년보다 28.6% 증가했다. 전체 수입차 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0.8%에서 11.9%로 높아졌다.
애스턴마틴은 2015년 한국에 정식 진출한 이후 11년간 누적 589대를 판매했다. 국내 초고가 자동차 시장의 성장 속도와 비교하면 아직 판매 기반은 크지 않지만, 그만큼 확대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 회사 측 판단이다.
애스턴마틴은 2024년 브리타니아 오토를 새로운 공식 수입사로 선정하고 서울과 수원에 전시장을 마련하는 등 국내 사업을 재정비했다. 이번에 SUV와 슈퍼 투어러, 스포츠카로 구성된 S-레인지 3종을 동시에 공개한 것도 제품 선택지를 넓혀 한국 시장에서 브랜드 존재감을 빠르게 높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차량 판매에만 의존하지 않는 전략도 추진한다. 드라이빙 행사와 장인정신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 오너 모임 등을 통해 애스턴마틴을 소유하는 과정 전체를 차별화된 경험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성능 수치가 비슷해지는 럭셔리카 시장에서 브랜드 역사와 고객 커뮤니티가 구매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제도 분명하다.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벤틀리, 포르쉐 등 경쟁 브랜드가 국내 서비스망과 고객 기반을 확대하고 있어 제품 성능만으로 격차를 좁히기는 어렵다. 서비스 접근성과 중고차 가치, 부품 공급, 고객 커뮤니케이션까지 안정적인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전동화를 뒤로 미룬 전략의 지속 가능성도 지켜봐야 한다. 각국의 배출가스 규제가 강화되고 고성능 전기차의 성능이 빠르게 향상되면 내연기관만으로 경쟁할 수 있는 시장은 축소될 수 있다. 애스턴마틴에는 현재 고객이 원하는 V8의 감성을 지키면서 미래 동력원으로 전환할 시점도 준비해야 하는 이중 과제가 놓여 있다.
S-레인지의 국내 출시는 단순한 고성능 신차 공개를 넘어 전동화 시대에도 내연기관의 감성과 경량화 기술이 상품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묻는 시험대다. 한국 시장에서 727마력이라는 숫자가 실제 판매와 고객 충성도로 이어진다면 국내 럭셔리카 시장은 글로벌 초고성능 브랜드의 전략을 검증하는 핵심 무대로 한층 더 부상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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