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처/테크

손목을 벗어난 헬스케어…집이 건강을 읽기 시작했다

  • HEM파마 ‘바이그널’, 일상적인 배변 과정에서 건강 신호 자동 수집·분석
  • 웨어러블 넘어 변기·생활가전·주거환경으로 건강 데이터 접점 확대
  • 고령화 시대 돌봄 대안 기대…분석 정확도·개인정보 보호는 과제

스마트워치와 스마트링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디지털 헬스케어가 집 안의 생활공간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몸에 기기를 착용하지 않아도 변기와 침실, 생활가전 등이 이용자의 건강 상태와 생활 변화를 지속적으로 파악하는 ‘생활공간형 건강관리’가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마이크로바이옴 헬스케어 기업 HEM파마가 글로벌 전자기업과 인공지능(AI) 기반 자율건강관리 플랫폼 ‘바이그널’의 실사용 검증에 나선 것도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바이오기업의 건강 데이터 분석 기술과 전자기업이 보유한 스마트기기·생활가전 생태계가 만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번 파일럿 서비스는 글로벌 전자기업이 모집한 성인 참여자를 대상으로 약 4주간 진행된다. 참여자에게 변기 부착형 바이그널 기기와 건강시그널 앱, 개인 맞춤형 영양 솔루션을 제공하고 실제 생활환경에서 사용 편의성과 운영 안정성, 건강 데이터의 수집·분석 과정을 점검한다.

바이그널은 일상적인 배변 과정에서 장내 가스와 배변 관련 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한다. 이를 건강검진 결과와 웨어러블 기기에서 생성되는 데이터 등과 함께 분석해 개인의 평소 상태와 시간에 따른 변화를 파악하고, 건강 분석 리포트와 맞춤형 영양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주목할 부분은 이용자가 건강 정보를 일일이 입력하거나 별도의 검사를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기존 건강관리 서비스는 기기를 계속 착용하고 충전하거나 식사·운동 기록을 직접 남겨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용 초기에는 관심이 높아도 시간이 지나면 기록과 착용을 중단하는 문제가 서비스 확산의 걸림돌로 지적돼 왔다.

반면 생활공간에 설치된 센서는 이용자의 일상적인 행동 속에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변기뿐 아니라 수면 상태를 파악하는 침실 센서, 실내 온도와 습도·공기질을 측정하는 환경 센서, TV와 냉장고 등 생활가전의 사용 패턴도 건강과 생활 상태의 변화를 살피는 보조 정보가 될 수 있다.

이는 웨어러블 기기가 사라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스마트워치가 심박수와 활동량, 수면 등 신체 중심의 데이터를 수집한다면 스마트홈은 주거환경과 생활 습관에 관한 정보를 보완한다. 두 데이터가 결합되면 병원에서 이뤄지는 일회성 검사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장기적인 변화의 흐름을 파악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로 집 안에서 이뤄지는 건강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고령자가 요양시설로 이동하지 않고 익숙한 집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이어가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가 확산하려면 건강 이상이나 생활 패턴의 변화를 조기에 파악할 수 있는 보조 수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평소와 달리 가전제품을 장시간 사용하지 않거나 화장실 이용 횟수, 수면 시간, 실내 활동량 등에 변화가 나타나면 가족이나 돌봄 인력에게 확인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다. 건강 문제가 발생한 뒤 대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작은 이상 징후를 먼저 살피는 예방적 관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전자기업이 홈 헬스케어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마트폰과 TV, 냉장고, 에어컨, 로봇청소기 등 집 안의 다양한 기기를 연결할 수 있는 전자기업은 건강관리 서비스를 일상 속에 확산할 수 있는 접점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

전자기업 입장에서는 제품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기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건강관리와 돌봄, 영양, 보험, 의료기관 연계 서비스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바이오·의료기업과의 협력이 늘어날 경우 가전과 헬스케어의 경계도 점차 흐려질 전망이다.

HEM파마 역시 바이그널을 단순한 변기 부착형 기기보다 지속적인 건강 데이터 수집과 분석, 개인 맞춤형 영양 솔루션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이다. 향후 수면과 식생활 등 다른 생활 데이터까지 결합하면 서비스 범위는 장 건강을 넘어 종합적인 일상 건강관리로 확대될 수 있다.

다만 이번 파일럿은 의료적 효과를 확인하는 임상시험이 아니라 실제 생활환경에서 서비스의 사용성과 운영 체계를 점검하는 실증에 가깝다. 수집된 건강 신호와 실제 건강 상태 사이의 연관성을 얼마나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지는 추가 연구와 검증이 필요하다.

데이터를 잘못 해석해 불필요한 불안을 유발하거나 반대로 건강 이상 신호를 놓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건강관리 정보와 의료적 진단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이상 징후가 발견됐을 때 의료기관 상담으로 연결하는 기준도 마련돼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는 시장 확산의 핵심 과제다. 배변 정보와 건강검진 결과, 생활 습관은 개인의 신체 상태를 드러내는 민감한 정보다. 수집 목적과 보관 기간, 제3자 제공 범위를 이용자가 쉽게 확인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하며 데이터 암호화와 최소 수집 원칙도 필요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가정에서는 누구의 데이터인지 정확하게 구분하는 기술도 중요하다. 가족 구성원을 잘못 식별하면 분석 결과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고, 본인의 동의 없이 다른 사람의 건강 정보가 수집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향후 홈 헬스케어 시장의 경쟁력은 센서를 많이 설치하는 것보다 서로 다른 데이터를 얼마나 정확하고 안전하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기기의 측정 정확도와 AI 분석 능력뿐 아니라 병원·돌봄기관과의 연계, 이용자 동의 절차, 서비스 지속성까지 갖춰야 한다.

병원은 앞으로도 진단과 치료의 중심으로 남겠지만 집은 병원 방문 사이의 변화를 관찰하는 공간으로 역할이 확대될 수 있다. HEM파마와 글로벌 전자기업의 이번 실증은 웨어러블 중심이던 디지털 헬스케어가 생활공간 전반으로 확장되는 초기 신호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집이 사람을 치료하는 시대가 곧바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축적되는 데이터를 통해 건강 변화를 더 일찍 발견하고 필요한 관리로 연결하는 기술은 고령화 시대의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바이그널이 실제 사용자 환경에서 편의성과 신뢰성을 입증하고 전자기업의 스마트홈 생태계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지가 향후 시장 확장의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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