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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 K산업]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건설 붐…전력부터 메모리·냉각까지 ‘K-인프라’가 움직인다

  • 효성중공업,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 밀집지 미국 버지니아 20개 프로젝트에 전력장비 공급
  • HD현대일렉트릭·LS 계열, 빅테크 수주와 사상 최대 실적으로 글로벌 전력시장 존재감 확대
  • 삼성전자·SK하이닉스·LG전자까지 가세…한국, AI 데이터센터 핵심 공급국으로 부상

세계 인공지능(AI) 경쟁의 무게중심이 알고리즘과 반도체를 넘어 데이터센터를 실제로 짓고 가동하는 ‘물리적 인프라’로 이동하고 있다. 고성능 AI 서버가 늘어나면서 전력 공급과 냉각, 메모리, 케이블, 배전설비가 동시에 부족해지자 이 분야에 강점을 가진 한국 기업들의 역할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2025년 약 485TWh에서 2030년 950TWh로 두 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AI 전용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같은 기간 약 3배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제 데이터센터 건설의 성패가 GPU 확보만이 아니라 전기를 끌어오고 안정적으로 배분하며 서버에서 발생하는 열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처리하느냐에 달린 셈이다.

이 같은 변화의 최전선에 한국 전력기기 기업들이 서 있다. 효성중공업의 미국 법인 HICO 아메리카는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20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의 전력망 연계 장비와 변압기 시스템을 공급하고 있다. 버지니아는 전 세계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의 약 35%가 모여 있는 지역으로, 이곳에서 확보한 공급 실적은 글로벌 빅테크와 전력회사에 한국 기술의 신뢰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레퍼런스가 된다.

효성중공업은 초고압 변압기뿐 아니라 가스절연차단기, 전압형 초고압직류송전, 전력 안정화 설비, 반도체 변압기 등을 묶은 데이터센터 전력망 종합 솔루션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의 현지 생산기지는 강화되는 미국산 우선구매 정책에 대응하면서 납기 경쟁력까지 확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의 성과도 구체적인 계약으로 나타나고 있다. 회사는 지난 7월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최대 1조1,212억원 규모의 북미 데이터센터용 배전·전력기기 장기 공급 기본계약을 체결했다. 배전기기와 전력기기를 패키지로 구성해 2028년까지 순차적으로 납품하는 계약이다.

HD현대일렉트릭의 올해 2분기 매출은 1조1,418억원, 영업이익은 2,87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각각 26%, 37.3% 증가했다. 2분기 말 수주잔고는 84억9,000만달러로 1년 전보다 29.6% 늘었다. 전체 수주잔고가 모두 데이터센터 물량은 아니지만 회사 측이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증가한 전력 수요가 배전·회전기기 수주로 이어지고 있다고 밝힌 점에서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LS그룹은 전기동 생산에서 케이블, 변압기, 배전반, 데이터센터 내부 전력 분배까지 연결되는 전력 밸류체인을 바탕으로 수혜 범위를 넓히고 있다. LS는 올해 2분기 매출 11조236억원과 영업이익 5,95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각각 40%, 153% 증가한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이다. 상반기 영업이익은 1조717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을 이미 넘어섰다.

LS전선과 LS일렉트릭의 합산 수주잔고도 상반기 말 19조5,554억원에 달했다. LS일렉트릭은 2분기 말 전력기기 수주잔고가 6조9,998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81.5% 늘었고, 미국 빅테크 고객 확대와 데이터센터용 직류 전력제품 개발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외부 전력망과 내부 서버실을 연결하는 전선·배전 분야에서도 대형 성과가 나오고 있다. 가온전선과 LS전선은 미국 빅테크 기업에 향후 5년간 최대 4조원 이상의 버스덕트를 공급하는 장기계약을 확보했다. 버스덕트는 대규모 전력을 데이터센터 내부에 안정적으로 전달하는 설비다. 가온전선은 별도로 약 350억원 규모의 미국 AI 데이터센터용 송전 케이블도 수주했으며, 미국 공장에 5,000만달러를 투자해 관련 생산능력을 두 배로 확대하고 있다.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한 뒤에는 막대한 열을 식혀야 한다. LG전자는 지난 7월 국내 기업 최초로 600㎾급 냉각수분배장치(CDU)에 대해 엔비디아 품질 인증을 받았다. CDU는 냉각수를 AI 서버의 GPU와 CPU에 직접 순환시켜 열을 회수하는 액체냉각 시스템의 핵심 장비다. 이번 인증은 LG전자의 제품이 엔비디아 기반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공급망에 진입할 수 있는 기술적 요건을 갖췄다는 의미가 있다.

삼성물산도 국내 냉각 전문기업과 함께 서버를 비전도성 액체에 담가 식히는 액침냉각 시스템을 개발했다. 회사 측은 냉각에 필요한 전력 소비를 기존 공랭식보다 최대 80%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 기업들이 단순 건물 시공을 넘어 데이터센터의 운영비와 전력효율을 좌우하는 핵심 기술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데이터센터 내부의 연산과 저장을 담당하는 반도체 분야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심 역할을 맡는다. SK하이닉스는 HBM을 비롯해 서버용 D램과 기업용 SSD를 연결한 ‘풀스택 AI 메모리’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HBM4 양산과 HBM4E 개발에 이어 AI 가속기 위에 메모리를 수직으로 쌓는 차세대 zHBM 구조까지 제시했다. 전력기기와 냉각설비가 데이터센터의 몸체라면, 한국의 HBM과 서버 메모리는 AI 연산의 속도를 결정하는 핵심 기관에 해당한다.

국내 데이터센터 운영 역량도 확대되고 있다. 삼성SDS는 경북 구미에 4,273억원을 투자해 60M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건립하고 2029년 가동할 예정이다. 고전력 GPU 서버에는 액체냉각을, 상대적으로 발열이 낮은 장비에는 공랭식을 적용하는 하이브리드 냉각 방식이 도입된다. 이는 수도권에 집중된 데이터센터를 지역으로 분산하고 국내에서 전력·냉각·운영 기술을 함께 검증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종합하면 한국은 AI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특정 부품 하나만 공급하는 국가가 아니다. HBM과 서버 메모리, 초고압 변압기, 배전반, 케이블과 버스덕트, 액체·액침냉각, 건설과 운영까지 데이터센터 밸류체인의 상당 부분을 국내 기업들이 동시에 담당할 수 있다. 글로벌 빅테크가 AI 모델과 GPU 플랫폼을 주도한다면, 한국 기업들은 이를 현실에서 작동시키는 전력·열관리·메모리 인프라를 책임지는 위치로 이동하고 있다.

다만 수주잔고 가운데 데이터센터가 차지하는 정확한 비중이 별도로 공개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장기 기본계약은 실제 발주 과정에서 금액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구분해야 한다. 미국의 현지생산 요구와 보호무역, 데이터센터 전력·용수 부족, 탄소배출 및 지역사회 반발도 성장 속도를 제한할 수 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개별 제품 수출을 넘어 전력망과 케이블, 냉각, 메모리, 건설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K-AI 데이터센터 인프라’ 전략이다. 초고압 전력망과 무탄소 전원 확충, 해외 인증 지원, 현지 생산거점 확보가 뒷받침된다면 한국은 반도체 강국을 넘어 세계 AI 인프라 건설을 떠받치는 핵심 국가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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