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로봇산업, AI를 만나다 (4/4) — 제조강국을 넘어 2035 AI·로봇 선도국으로
- 핵심 기술·데이터·인재·실증·투자를 연결하는 7대 전략…개별 기업의 성장을 국가 경쟁력으로
- 제조 현장을 피지컬 AI의 학습 기반으로 전환하고, 검증된 산업별 로봇 솔루션을 세계시장으로
- ‘2035 로봇강국’의 기준은 보급 대수를 넘어 생산성·안전·삶의 질…기술의 성과를 사회 전체로 확산해야
3부에서는 휴머노이드와 피지컬 AI가 제조와 물류, 의료·돌봄, 건설, 국방 등 산업과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살펴봤다. 분야마다 로봇의 형태와 도입 속도는 다르지만, 경쟁의 방향은 하나로 모인다. 기계와 인공지능, 현장에서 축적되는 데이터, 이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운영체계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하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질문은 대한민국이 이 변화의 수혜자를 넘어 주도자가 될 수 있느냐다. 제조업의 강점을 AI와 소프트웨어 경쟁력으로 전환하고, 그 성과를 중소기업과 지역, 국민의 일상까지 확산할 수 있는 국가적 실행체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의 출발점은 분명한 강점을 갖고 있다. 국제로봇연맹(IFR)이 2026년 4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2024년 제조업 로봇 밀도는 근로자 1만 명당 1,220대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자동차와 전자산업을 중심으로 축적한 자동화 경험은 피지컬 AI를 실제 생산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다.
그러나 로봇 밀도는 제조업에서 로봇을 얼마나 활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국내 기업이 로봇의 핵심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 중소기업과 서비스업까지 그 혜택이 얼마나 확산됐는지를 그대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로봇을 많이 사용하는 역량을 로봇산업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역량으로 연결하는 일이 다음 과제다.
이 기획이 제안하는 ‘2035 대한민국 로봇강국’의 비전은 모든 기술을 국내에서 만들거나 모든 현장을 무인화하는 데 있지 않다. 핵심 기술의 선택권을 확보하고, 세계시장에 통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키우며, 생산성 향상이 더 안전한 노동과 더 나은 생활로 이어지는 나라를 만드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일곱 가지 전략이 하나의 실행 흐름으로 연결돼야 한다.
첫째, 국가 전략을 ‘사업의 목록’에서 ‘성과의 체계’로 바꿔야
대한민국에 로봇 육성 정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24년 제4차 지능형로봇 기본계획을 확정하면서 2030년까지 민관합동 3조 원 이상 투자, 로봇 100만 대 보급, 핵심 부품 국산화율 80% 등의 목표를 제시했다. 기존 계획의 성과와 한계를 점검하면서 AI와 로봇의 결합에 맞춰 실행 방식을 고도화하는 것이 출발점이어야 한다.
국가 프로젝트의 실효성은 새로운 조직이나 사업 명칭보다 연구개발 이후의 연결 구조에서 나온다. 기술개발을 지원한 뒤 실증 장소를 찾지 못하거나, 실증을 마친 제품이 인증과 구매 단계에서 멈춘다면 투자는 산업 경쟁력으로 축적되기 어렵다.
범정부 조정체계는 연구개발과 실증, 안전 검증, 초기 구매, 민간 투자, 해외 진출을 하나의 경로로 연결해야 한다. 정부는 공통 기반과 제도를 마련하고, 수요기업은 실제 해결할 과제와 도입 조건을 제시하며, 로봇기업과 대학·연구기관은 기술 개발과 검증을 맡는 방식이다. 사업별 책임 주체와 다음 단계로 넘어갈 기준도 명확해야 한다.
지원 분야 역시 선택이 필요하다. 선박 용접, 제조공정 검사, 물류 이송, 병원 배송처럼 수요와 성과를 비교적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분야에서 상용화 기반을 넓히는 동시에, 범용 로봇 지능과 정교한 조작 기술 등 장기 연구를 별도로 지속해야 한다. 당장의 매출만으로 원천 연구를 평가하거나, 먼 미래의 가능성만으로 상용화 사업을 연장해서는 안 된다.
정책의 성과지표도 보급 대수와 예산 집행률에 머물러서는 부족하다. 실제 가동률과 작업 성공률, 불량률과 위험 작업 노출의 감소, 고객의 재구매, 해외 매출까지 확인해야 한다. 장기 목표는 유지하되 기술과 시장의 변화에 따라 지원 수단은 조정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둘째, 제조 현장의 경험을 AI와 데이터의 경쟁력으로 전환해야
한국 제조업의 중요한 자산은 설비뿐 아니라 그 설비를 운영하며 축적한 경험이다. 부품의 미세한 편차를 판단하는 눈, 용접 상태에 따라 힘과 속도를 조절하는 손, 이상 징후를 먼저 알아채는 숙련자의 판단에는 로봇이 배워야 할 정보가 담겨 있다.
다만 공장에 데이터가 많다고 해서 곧바로 로봇 학습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산 실적이나 설비 온도 기록과 달리, 로봇에는 무엇을 보고 어떤 동작을 했으며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를 연결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작업 영상과 위치, 힘, 접촉 상태,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함께 기록하고 정리하는 체계가 중요하다.
따라서 제조 AI 플랫폼의 출발점은 거대한 저장소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산업별로 활용 가능한 데이터 형식과 평가 기준을 정립하는 일이어야 한다. 선박 용접, 부품 조립, 물품 집기 등 과제별 데이터를 축적하고, 실제 환경을 모사한 시뮬레이션과 연결해 학습과 검증 비용을 낮추는 방식이다. 가상환경의 성능이 실제 현장에서도 재현되는지는 별도로 검증해야 한다.
데이터 공유에는 명확한 거래 원칙도 필요하다. 기업의 공정 정보와 노동자의 작업 영상은 무조건 공개할 수 있는 공공재가 아니다. 이용 목적과 접근 범위, 영업비밀 보호, 개인정보 처리, 학습 결과의 활용 권한, 기여에 대한 보상을 사전에 정해야 참여가 지속될 수 있다. 원본을 외부로 반출하지 않고 정해진 환경에서만 활용하는 방식도 선택지가 된다.
국가는 이러한 공통 기반을 지원하되 하나의 플랫폼을 모든 기업에 강제하기보다 여러 기업과 연구팀이 경쟁하고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산업별 로봇 AI 모델과 작업 소프트웨어를 키우는 한편, 국내 기업이 세계적인 기술과 개발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 개방성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핵심은 국내 현장에서 생긴 경험이 국내 기업의 학습 역량과 사업 자산으로도 남게 하는 것이다. 공장에서 로봇이 일하고, 그 경험이 AI를 개선하며, 개선된 기술이 더 많은 현장에 적용되는 순환을 만들어야 제조업의 강점이 소프트웨어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셋째, 핵심 부품의 자립은 ‘국산 비율’과 ‘고객의 선택’을 함께 봐야
정밀 감속기와 모터, 액추에이터, 힘·촉각 센서, 제어기, AI 반도체 등은 로봇의 성능과 가격, 신뢰성을 좌우한다. 특히 사람과 가까운 거리에서 움직이는 로봇은 작은 오차나 고장도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 부품의 정밀도와 내구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부품의 국내 생산을 같은 우선순위로 추진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 공급이 끊겼을 때 산업에 미치는 영향, 대체 공급처의 유무, 국내 기술의 성장 가능성, 세계시장 수요를 함께 검토해 전략 품목을 정해야 한다. 국내 기술 확보와 공급처 다변화, 국제 공동개발을 조합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부품기업이 넘어야 할 장벽은 개발 이후에도 남아 있다. 성능을 입증할 장기 시험, 수요기업의 품질 검증, 양산 설비와 초기 주문이 연결돼야 한다. 국산 시제품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기존 제품을 교체하도록 요구하기보다 실제 현장에서 선택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대기업과 로봇 완제품 기업은 개발 초기부터 요구 성능과 시험 조건을 제시하고, 검증 결과에 따라 구매로 이어질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연구기관은 중소 부품기업이 개별적으로 갖추기 어려운 내구성·신뢰성 시험 기반을 지원할 수 있다.
성과 역시 국산화율과 함께 해외 고객의 채택, 반복 주문, 수명과 유지비용으로 평가해야 한다. 국내 공급망의 안정성을 높이면서 세계 로봇기업에도 공급할 수 있는 부품기업을 키우는 것이 장기적인 자립의 기반이다.
넷째, 융합 인재는 대학과 현장을 오갈 수 있어야
AI·로봇 인재를 늘리는 일은 관련 학과 정원을 확대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기계와 전자, 제어, AI, 소프트웨어를 연결하는 역량과 함께 실제 공정의 제약을 이해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한 사람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른 분야의 문제를 이해하고 협업할 수 있는 팀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다. AI 연구자와 기계 설계자, 안전 담당자, 현장 기술자가 같은 과제를 함께 해결하는 교육과 연구 방식이 요구된다.
대학원과 연구기관에는 장기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기업과 공동으로 실제 로봇을 운영하며 데이터를 축적할 기회를 넓혀야 한다. 논문과 특허뿐 아니라 재현 가능한 실험, 공개 가능한 소프트웨어, 현장 적용 성과도 평가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산업 전체로 보면 설치와 운영, 유지보수, 안전 검증을 담당할 실무 인력도 중요하다. 좋은 로봇을 개발해도 현장에 맞게 통합하고 고장을 해결할 사람이 부족하면 보급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대학과 전문대학, 직업훈련기관, 지역 기업이 역할을 나눠 연구 인재와 실무 인재를 함께 양성해야 한다.
숙련 노동자 역시 전환의 핵심 주체다. 오랜 경험을 가진 작업자가 로봇의 작업 방식을 설계하고 오류를 교정하는 역할로 이동할 수 있도록 현장 교육과 경력 경로를 마련해야 한다. 사람의 경험을 데이터로 남기는 일과 그 경험을 가진 사람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은 함께 추진돼야 한다.
다섯째, 실증의 성공을 구매와 투자로 연결해야
세계적인 실증 국가가 된다는 것은 시험 공간을 많이 보유한다는 뜻만은 아니다. 현장에서 검증된 제품이 유료 계약과 반복 구매로 이어지고, 그 수익이 다음 기술 개발에 투입되는 구조를 갖춘다는 의미다.
실증사업은 시작할 때부터 고객과 평가 조건이 명확해야 한다. 누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는지, 기존 방식보다 무엇이 개선돼야 하는지, 유지관리와 고장 대응은 누가 맡는지를 정해야 한다. 실증이 끝난 뒤 실제 운영비를 부담할 주체가 없다면 보조금으로 설치한 장비가 방치될 수 있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초기 고객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구매 대수를 채우기 위한 조달보다 배송 업무의 지연 감소, 위험구역 점검의 정확도, 이용자의 접근성 등 서비스 성과를 평가하는 방식이 적절하다. 중소기업과 신규 기업에도 공정한 진입 기회를 제공하고, 운영 결과가 다음 구매 결정에 반영돼야 한다.
민간 확산을 위해서는 자금 구조도 달라져야 한다. 로봇은 시제품 개발 이후에도 내구성 검증과 양산, 설치, 유지보수망 구축에 자금이 필요하다. 연구개발 지원과 단기 투자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 구간에 정책금융과 민간 자본, 수요기업의 구매 약정을 연결할 필요가 있다.
사용 시간이나 작업량에 따라 비용을 내는 서비스형 로봇(RaaS)은 고객의 초기 부담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장비를 먼저 확보하고 유지해야 하는 공급기업에는 자금과 운영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도입기업의 비용만 낮추는 설계가 아니라 공급기업의 현금흐름과 장비 가동률까지 검토해야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된다.
모든 기업과 제품을 끝까지 지원할 수는 없다. 현장 성과에 따라 후속 자금을 배분하되, 중단된 사업에서도 활용 가능한 기술과 인재가 다음 도전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장기 투자는 무조건 기다리는 투자가 아니라 충분한 검증 시간을 주고 결과에 책임을 묻는 투자여야 한다.
여섯째, 규제와 표준을 시장 진입의 기반으로 설계해야
로봇의 규제 문제를 단순히 규제를 풀 것인가, 유지할 것인가로 접근해서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 공장 안에서 물품을 옮기는 로봇과 환자의 신체를 직접 지지하는 로봇은 사고의 위험과 검증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용 환경과 위험도에 따라 시험 범위와 인증 절차를 구체화하고, 기업이 개발 단계부터 필요한 요건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한된 조건에서 충분히 검증한 기술은 적용 범위를 넓힐 수 있어야 하지만,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기능을 실증이라는 이유로 일상 공간에 투입해서는 안 된다.
국제표준은 이러한 검증의 공통 기반이 된다. 2025년 개정된 ISO 10218 시리즈는 산업용 로봇 자체의 안전과 로봇을 통합한 응용 시스템의 안전을 구분해 다룬다. 부품이나 로봇 한 대의 성능뿐 아니라 설치와 운영, 유지보수를 포함한 전체 시스템을 검토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은 국제표준화기구(ISO)와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등의 논의에 현장 경험과 시험 데이터를 반영하고, 중소기업이 개발 초기부터 해외 안전 요구사항을 적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통신과 작업 명령, 데이터 형식의 호환성을 높여 다른 제조사의 로봇과 소프트웨어가 함께 작동할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다.
안전은 물리적인 충돌 방지에 그치지 않는다. 원격 접속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의 보안, 통신이 끊겼을 때의 안전 정지, 사고 기록 보존, 제조사와 운영자의 책임 구분도 설계에 포함돼야 한다. 국방 분야의 무력 사용과 관련해서는 인간의 통제와 책임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과 운영 경험을 제품에 함께 담아 수출해야 한다. 해외 고객이 구매하는 것은 로봇 본체만이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하고, 문제가 생기면 복구되며, 장기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신뢰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생산성의 성과를 국민의 삶과 노동의 전환으로 연결해야
AI와 로봇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미래를 낙관하라는 설명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위험한 업무가 줄었는지, 돌봄을 기다리는 시간이 짧아졌는지, 작은 기업도 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됐는지와 같은 경험이 쌓여야 한다.
특히 고령자와 장애인의 이동·생활 지원, 재활, 재난 대응 등에서는 개발자뿐 아니라 이용자와 가족, 현장 전문가가 설계와 평가에 참여해야 한다. 기능이 많아도 사용하기 어렵거나 오작동 때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좋은 서비스라고 보기 어렵다.
돌봄 분야에서는 로봇이 반복 업무와 신체적 부담을 줄여 사람이 사람을 돌볼 시간을 확보하는 방향이 중요하다. 비용 절감을 이유로 필요한 인력을 일률적으로 줄이거나 인간의 관계를 기계로 대체하는 방식은 기술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 있다. 개인정보 보호와 이용자의 선택권도 함께 보장돼야 한다.
일자리에 대한 설명 역시 정직해야 한다. 로봇은 부족한 노동력을 보완하고 새로운 업무를 만들 수 있지만, 일부 직무와 고용을 줄이거나 재편할 가능성도 있다. 산업 전체의 생산성 향상이 개별 노동자의 고용 안정으로 자동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로봇 도입 계획에는 직무 변화에 대한 사전 협의, 유급 재교육, 전환 배치, 필요한 소득 지원이 함께 검토돼야 한다. 생산성의 성과를 임금과 근로환경 개선, 노동시간 조정 등으로 어떻게 나눌 것인지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지역과 기업 규모에 따른 격차를 줄이는 일도 과제다. 자체 도입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에는 공정 진단부터 설치와 유지보수까지 지원하고, 지역 의료·돌봄 현장에는 지속적인 운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로봇산업의 시장과 사회적 기반도 함께 커진다.
2035년을 향한 세 단계, 기반 구축에서 확산과 수출로
이 일곱 가지 전략은 시간표가 있을 때 실행력을 갖는다. 다만 ‘2035 로봇강국’은 확정된 미래가 아니라 정책과 투자, 기술 검증을 통해 달성해야 할 목표다. 다음의 단계 구분 역시 정부의 확정 계획이 아닌 이번 기획의 제안이다.
2026~2028년은 기존 사업을 점검하고 우선 분야의 기반을 다지는 시기로 삼을 수 있다. 실제 수요가 있는 과제를 선정해 공통 데이터 형식과 평가 방법을 정하고, 핵심 부품의 신뢰성 검증과 현장 인력 양성을 연결하는 단계다. 성과는 시연 횟수보다 안정적인 작업 수행과 유료 도입 가능성으로 판단해야 한다.
2029~2031년에는 검증된 모델을 다른 기업과 지역으로 확산하는 데 무게를 둘 필요가 있다. 특정 대기업의 공장에서만 작동하는 기술을 중소기업과 다른 작업 환경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설치·교육·안전·유지보수 체계를 묶어야 한다. 재구매율과 운영비용, 고객의 실제 생산성 개선이 주요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다.
2032~2035년에는 국내에서 입증한 산업별 솔루션을 해외시장으로 확장하는 단계가 요구된다. 선박 용접과 검사, 제조 물류, 병원 운영 지원 등 경쟁력을 확보한 분야를 중심으로 로봇과 소프트웨어, 운영 서비스를 함께 수출하는 방식이다. 해외 매출의 규모와 함께 유지관리 계약, 지속적인 업데이트 수익, 현지 고객의 재계약도 살펴야 한다.
이 시간표는 기술 발전을 낙관해 일률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공장과 물류시설처럼 작업 조건을 관리하기 쉬운 분야와 가정·돌봄처럼 사람의 행동과 환경 변화가 큰 분야는 도입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안전성과 경제성이 입증된 영역은 확산하고, 검증이 부족한 영역은 연구와 시험을 계속하는 원칙이 필요하다.
2035년의 성과도 로봇이 얼마나 사람처럼 움직이는지에 국한될 수 없다. 중소기업이 인력난 속에서도 생산을 이어가고, 숙련자가 위험한 자세로 작업하는 시간이 줄며, 의료진과 돌봄 인력이 사람에게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어야 한다. 국내 기업이 핵심 기술과 수익 기반을 확보하고, 해외에서도 지속적으로 선택받는 구조가 갖춰져야 한다.
로봇강국의 마지막 기준은 사람이다
이번 연재가 살펴본 대한민국 로봇산업의 가능성과 과제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이미 보유한 제조 역량을 앞으로의 지능과 서비스, 그리고 더 나은 삶의 기반으로 바꿀 수 있는가다.
한국은 산업 현장과 기술 인력, 반도체와 정밀 제조 경험이라는 자산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강점은 연결하고 갱신하지 않으면 미래의 경쟁력을 보장하지 못한다. 공장의 경험이 데이터로 남고, 데이터가 로봇의 능력을 높이며, 그 능력이 고객의 선택과 기업의 수익으로 이어질 때 지속적인 성장의 기반이 만들어진다.
정부는 장기적인 방향과 공정한 규칙을 마련하고, 기업은 현장을 열어 기술의 가치를 검증하며, 대학과 연구기관은 다음 세대의 지식과 인재를 길러야 한다. 노동자와 시민은 이 변화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기술의 쓰임과 성과의 분배를 함께 결정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
2035년의 대한민국을 오늘 완성할 수는 없다. 다만 어떤 기술에 투자하고, 어떤 현장에서 먼저 검증하며, 누구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도록 할 것인지는 지금 결정할 수 있다.
로봇강국의 성과는 세계시장에 공급한 기술과 제품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그 나라가 지향한 미래의 가치는 사람이 덜 위험하게 일하고, 필요한 돌봄을 더 가까이에서 받으며, 변화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찾을 수 있는지로 평가받아야 한다.
제조의 힘을 지능의 경쟁력으로, 지능의 경쟁력을 사람의 더 나은 삶으로 연결하는 일. 그것이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AI·로봇 강국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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