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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유명 셰프들, 성수기 식당 닫고 안동행…한식 파인다이닝 가능성 찾는다

  • 미슐랭 원스타 등 파리 현지 셰프 8명 방한…10박 11일 한식 집중 연수
  • 백양사 사찰음식 이어 안동 종가음식 체험…된장·간장 등 발효문화에 높은 관심
  • 불고기·비빔밥 넘어 고급 미식으로…한식 세계화의 질적 도약 가능성 주목

세계적인 미식 도시 프랑스 파리의 유명 레스토랑 셰프들이 여름철 성수기 영업까지 뒤로한 채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전남 장성 백양사의 사찰음식과 경북 안동의 종가음식, 발효문화를 직접 배우며 한식을 유럽의 파인다이닝으로 확장할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프랑스·한국 문화교류협회인 FRKO 커넥트협회에 따르면 ‘코리안 테이스트 & 떼루와 랍’ 프로그램에 선발된 파리 현지 셰프 8명은 지난 3일 한국에 입국해 10박 11일 일정으로 한식 문화 체험에 참여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을 비롯한 파리의 유명 식당에서 활동하는 30~40대 베테랑 셰프들로 구성됐다. 모두 프랑스 요리 등 서양식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정통 한식의 조리법과 식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한국행을 결정했다.

일부 셰프들은 여름철 최대 성수기임에도 자신의 레스토랑 영업을 조정하면서까지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한 관광이나 메뉴 체험이 아니라 향후 자신들의 요리에 적용할 수 있는 한식의 본질과 조리 철학을 직접 배우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셰프들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전남 장성 백양사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찰음식 명장 정관 스님으로부터 한국 사찰음식의 조리법과 철학, 발효의 기본 원리를 배웠다.

사찰음식은 육류와 자극적인 양념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제철 식재료와 발효 식품을 활용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이 특징이다. 자연성과 지속가능성, 건강을 중시하는 최근 글로벌 미식 트렌드와 맞닿아 있어 해외 셰프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이어 8일부터 9일까지 안동에 머물며 종가음식과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전통 한식을 체험한다. 쌀을 비롯한 지역 농산물과 장류, 발효 식재료가 어떻게 오랜 시간 한국인의 식생활과 연결돼 왔는지를 직접 배우는 일정이다.

특히 참가 셰프들은 된장과 간장 등 한국의 발효음식에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양 요리에서도 발효와 숙성은 중요한 조리 방식이지만 한국은 장류와 김치, 식초 등 다양한 발효식품이 일상 식문화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미식 자산으로 평가된다.

프랑스에서 온 유명 셰프들이 장류 등 한국의 전통 발효 음식을 체험하고 있는 모습

세계 외식업계에서는 최근 자연 친화적인 식재료와 건강식, 지속가능한 조리법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한 식재료를 활용하고 발효를 통해 깊은 풍미를 구현하는 한식은 이러한 변화와 높은 접점을 갖고 있다.

이번 프로그램이 서울의 유명 레스토랑이나 현대적인 한식당보다 백양사와 안동 등 전통 음식의 뿌리를 직접 찾는 방식으로 구성된 것도 한식을 단순 메뉴가 아닌 문화와 철학으로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행사를 기획한 배경에는 최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높아지고 있는 한식의 인기도 자리 잡고 있다. K팝과 드라마, 영화 등 K콘텐츠의 확산과 함께 김치와 불고기, 비빔밥, 한국식 치킨 등이 알려지면서 파리에서도 한식당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한식의 글로벌 확산이 아직 대중적인 메뉴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프랑스 고급 레스토랑과 미슐랭 파인다이닝에서 한식의 조리기법과 식문화가 주요 미식 장르로 자리 잡은 사례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프로그램을 준비한 최은옥 FRKO 커넥트협회장은 파리에서 직접 한식당을 운영하면서 이러한 한계를 체감해왔다.

최 협회장은 “최근 파리에서 불고기와 비빔밥 등 일상적인 한식 메뉴를 판매하는 곳은 많이 늘었지만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식을 접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며 “한식의 유행이 단기적인 관심과 양적인 성장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한식의 장기적인 세계화를 위해서는 한국 음식 자체를 해외에 그대로 재현하는 것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셰프들이 한식의 조리 원리와 식재료를 이해하고 자신의 요리에 재해석하는 과정도 중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랑스 셰프가 된장이나 간장, 발효 채소 등을 프랑스 요리에 활용하거나 한국의 사찰음식 철학을 현대적인 파인다이닝에 접목하면 한식은 특정 국가의 전통요리를 넘어 세계 미식의 새로운 조리 언어로 확장될 수 있다.

실제로 세계 파인다이닝 시장에서는 일본의 발효 조미료와 다시, 페루의 식재료, 북유럽의 발효·보존 기술처럼 특정 지역의 전통적인 식문화가 세계 셰프들의 창의적인 조리법과 결합하며 새로운 미식 트렌드로 발전한 사례가 적지 않다.

한식 역시 장류와 발효, 나물, 사찰음식, 종가음식 등 아직 세계적으로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풍부한 자산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특히 외국 셰프들이 한국의 식문화 현장을 직접 방문해 생산자와 조리 전문가에게 기술과 철학을 배우는 방식은 단순한 한식 홍보보다 지속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현지 고객에게 한식의 이야기를 전달할 경우 자연스러운 문화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FRKO 커넥트협회는 이번 프로그램을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내년에도 이어갈 계획이다. 파리의 셰프와 한국의 전통음식 전문가 간 교류를 지속 확대해 한식이 세계적인 고급 미식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이번 파리 셰프들의 안동 방문은 한식 세계화의 방향이 ‘얼마나 많은 한식당을 해외에 만드는가’에서 ‘세계 미식계가 한식의 가치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활용하는가’로 이동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한식의 다음 경쟁력은 불고기와 비빔밥을 넘어 발효와 종가음식, 사찰음식에 담긴 조리 철학을 세계적인 셰프들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데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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