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처/테크

원전 수출 경쟁, 원자로 밖에서 갈린다…한국 ‘규제 패키지’ 전면에

  • 산업부·원안위, 수출사업과 안전규제 협력 연계하는 첫 공동대응 체계 구축
  • 법령·인허가·기술기준·전문인력까지 지원…신규 도입국 맞춤형 협력 추진
  • 설계·건설 중심 수출 넘어 규제 인프라까지 포괄하는 ‘원전 생태계 수출’ 시동

한국 원전 수출 전략의 범위가 발전소 설계와 건설을 넘어 안전규제 체계까지 확대된다. 원전을 처음 도입하는 국가에 발전설비만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법령과 인허가 절차, 기술기준, 규제기관의 전문역량 구축까지 지원하는 방식이다. 세계 원전시장에서 기술력과 가격뿐 아니라 규제 경험도 수주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부상한 데 따른 변화다.

산업통상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13일 서울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한국형 원전의 성공적인 해외 진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양 부처가 원전 수출사업과 해외 안전규제 협력을 연결하는 공식 공동대응 체계를 마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수출 대상국이 규제 협력을 요청하면 산업부가 수요를 원안위에 전달하고 원안위와 전문기관이 개별적으로 대응해 왔다. 앞으로는 해외 원전사업의 추진 상황과 국가별 규제 여건, 협력 요청을 상시 공유하고 사업 초기부터 공동 대응한다.

원전을 처음 건설하는 국가는 발전소 부지와 사업비만 확보한다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자력 안전과 안보를 뒷받침할 법률, 독립적인 규제기관, 건설·운영 인허가 절차, 검사 기준과 전문인력을 함께 갖춰야 한다. 규제 체계가 준비되지 않으면 사업자나 원자로 기술을 선정하더라도 인허가와 건설 일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커진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역시 신규 원전 도입 과정을 단계적으로 관리하는 ‘마일스톤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체계는 원전 도입 결정을 내리기 전 단계부터 정부와 사업자뿐 아니라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규제기관을 핵심 조직으로 구축하도록 안내한다. 규제 인프라는 발전소가 완공된 뒤 마련하는 부수적인 제도가 아니라 도입 검토 단계부터 준비해야 하는 기반이라는 의미다.

한국은 원전의 설계와 건설, 시운전, 운영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규제 경험을 축적해 왔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수출 대상국의 제도와 사업단계에 맞춰 법령 정비, 기술기준 마련, 인허가 심사, 안전·안보 인력 양성 등에 관한 협력을 추진할 계획이다.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사업에서도 규제기관 간 협력이 병행되고 있다. 원안위와 체코 원자력안전청은 2024년 원자력 안전규제 분야 협력약정을 체결했다. 상업적 계약을 담당하는 사업자와 별개로 양국 규제기관이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 것이다. 다만 규제기관의 독립적인 안전 판단과 수출 지원 정책은 역할이 구분돼야 한다. 협력 강화가 특정 사업의 인허가 결과를 보장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번 협약에는 실행기관들도 참여했다.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전수출산업협회,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은 별도의 업무협약을 맺고 수출사업 정보와 규제 협력 수요를 연계하기로 했다. 수출기업과 안전·통제 전문기관이 사업 초기부터 함께 참여하는 구조다.

정부가 주목하는 시장은 베트남과 필리핀을 비롯한 신규 원전 검토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에 대한 구체적인 사업 일정이나 한국형 원전 채택 여부는 확정된 사실과 검토·협력 단계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이번 협약도 당장의 원전 수주를 의미하기보다는 향후 협상과 사업 추진에 필요한 제도적 기반을 갖추는 조치에 가깝다.

원전은 건설 이후에도 운영과 안전검사, 핵물질 통제, 방사성폐기물 관리와 해체까지 장기간 규제가 이어지는 산업이다. 규제 역량을 포함한 수출은 한국이 단일 발전소를 판매하는 데서 벗어나 제도와 인력, 운영 경험을 함께 제공하는 장기 협력국으로 자리 잡으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앞으로의 성과는 협약 체결 자체보다 대상국별 지원사업의 구체화와 실제 수주 과정에서 규제 협력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에 따라 평가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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