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나우] 찬물 컵라면·얼리는 화장품·‘인간 냉장고’…폭염이 바꾼 상품의 상식
- 닛신 찬물 컵라면, 한두 달치 물량 일주일 만에 소진…뜨거운 물 공식 깨뜨려
- 냉동고에 넣는 미용액부터 얼음수건 스탬프·냉각조끼·초대형 냉방상자까지
- 재미로 눈길 끌고 실용성으로 구매 유도…‘냉감’이 새로운 생활상품 기준으로
컵라면은 뜨거운 물로 익혀야 한다는 68년간의 상식이 깨졌다. 일본 닛신식품이 찬물을 붓고 5분만 기다리면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을 선보이자 한두 달간 판매할 예정이던 초기 물량이 일주일 만에 동났다. 단순한 호기심 상품처럼 보였지만 장기화하는 폭염과 간편식 수요, 소셜미디어 체험 문화가 맞물리며 새로운 식품 카테고리로 떠올랐다.
닛신이 출시한 ‘차갑게 먹는 컵누들’은 매운 김치맛과 치킨 솔트 레몬맛 두 종류다. 가격은 개당 307엔으로, 자체 특허 기술인 ‘콜드 리하이드레이트’ 방식을 적용해 뜨거운 물 없이도 면이 수분을 흡수하고 탄력을 유지하도록 설계했다.
기존 냉라면은 뜨거운 물로 면을 익힌 뒤 얼음이나 찬물로 식히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닛신 제품은 조리 시작부터 끝까지 찬물만 사용한다. 별도의 가열 장비가 필요하지 않아 한여름 야외활동뿐 아니라 전기와 연료 사용이 제한되는 재난 상황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찬물 컵라면이 주목받은 이유는 기술적 새로움에만 있지 않다. 소비자가 물 대신 두유나 차를 넣어 먹는 영상을 올리면서 제품은 하나의 실험 콘텐츠로 확장됐다. 제품을 구매해 먹는 행위보다 ‘정말 찬물에 익는지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소비 경험이 된 것이다.
올여름 일본 시장에서는 이처럼 기존 제품의 사용법과 형태를 뒤집은 이색 냉감 상품이 잇따르고 있다. 식품뿐 아니라 화장품과 위생용품, 의류, 산업용 장비까지 더위를 줄이는 기능이 새로운 제품 경쟁력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냉동고에 얼려 사용하는 화장품이다. 일본 시세이도는 지난 6월 그룹 최초로 냉동고에 넣어 사용하는 ‘S 소르베 세럼’을 수량 한정으로 출시했다. 일반적인 미용액은 얼리면 성분이 분리되거나 제형이 손상될 수 있지만, 이 제품은 냉동 후에도 품질을 유지하면서 젤이 셔벗처럼 변하도록 만들었다.
냉동고에서 꺼낸 미용액은 피부에 닿으면 사각거리는 소르베 제형이 녹으면서 냉감과 보습 효과를 함께 제공한다. 화장품을 냉장 보관하는 수준을 넘어 ‘얼려서 사용하는 것’을 정식 사용법으로 설계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무더위로 스킨케어 자체를 번거롭게 느끼는 소비자에게 제품을 바르는 시간을 새로운 감각적 경험으로 바꾼 것이다.
여름철 불편을 세분화한 냉감 위생용품도 등장했다. 유니참은 멘톨 성분을 활용한 ‘소피 쿨’ 생리대와 팬티라이너, 전용 물티슈 등 6종을 한정 판매하고 있다. 열과 습기가 차기 쉬운 환경에서 청량감을 제공하고 통기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이 제품은 냉각장치처럼 체온을 직접 낮추는 것이 아니라 멘톨과 소재 설계를 통해 체감상 시원함과 쾌적함을 높이는 상품이다. 기업들이 ‘여름용’이라는 계절 구분을 옷이나 침구에서 화장품과 위생용품으로 확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젖은 수건을 즉석에서 얼음수건으로 만드는 상품도 나왔다. 일본 생활용품 업체 라이프온프로덕츠가 출시한 ‘얼음결정 스탬프’는 물에 적신 수건에 제품을 눌러 사용하면 해당 부분의 수분이 빠르게 얼어붙는 방식이다.
미리 수건을 냉동고에 넣어두지 않아도 필요한 순간 차가운 수건을 만들 수 있고, 스프레이 방식으로 전환하면 옷 위에 분사해 넓은 부위를 식힐 수도 있다. 폭염에 달궈진 자전거 안장이나 야외 벤치를 식히는 용도로도 제안됐다. 가격은 1650엔으로, 휴대성과 즉시성이 핵심 경쟁력이다.
손에 들고 다니던 냉각용품은 옷 안으로도 들어갔다. 아웃도어 브랜드 스노피크는 올해 처음으로 ‘쿨링 시스템 웨어’ 시리즈를 출시했다. 최상위 제품인 펠티어 냉각조끼에는 전기를 흘리면 한쪽 면이 차가워지는 펠티어 소자 6개와 팬 2개가 적용됐다. 피부와 맞닿은 부위를 직접 식히면서 팬이 옷 안의 공기를 순환시키는 구조다.
별도의 수냉식 조끼는 등 부분의 탱크에 찬물이나 얼음을 넣고 작은 펌프로 옷 내부의 관에 냉수를 순환시킨다. 과거 건설 현장과 공장에서 주로 사용됐던 팬 부착 작업복이 일상복과 아웃도어 의류로 진화한 셈이다.
가격도 일반 여름 조끼와는 차이가 크다. 펠티어 냉각조끼는 9만9000엔, 수냉식 조끼는 5만7200엔이다. 단순한 패션 상품보다 야외작업과 캠핑, 스포츠 활동을 위한 개인용 냉각장비에 가깝다.
냉장고에 넣어두는 얼음주머니 역시 소재를 바꾸며 이색 상품으로 변신했다. 일본 도시샤가 출시한 휴대용 냉각용품 ‘고릴라의 냉각봉’은 일반적인 실리콘 대신 알루미늄 합금을 사용했다. 물을 넣어 얼린 뒤 목과 팔, 다리 등에 대는 방식으로, 금속의 높은 열전도율을 활용해 강한 냉감을 전달한다.
제품명과 포장에는 선탠한 고릴라 캐릭터를 활용해 강렬한 냉감을 강조했다. 실용적인 폭염 대응 기능에 기억하기 쉬운 이름과 유머를 결합한 것이다. 출시 전부터 주문이 몰리면서 당초 계획보다 생산량을 크게 늘렸으며, 올해 판매량이 20만 개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개인이 휴대하는 제품을 넘어 사람 한 명이 통째로 들어가는 ‘냉장고’도 등장했다. 일본 산업용품 업체 트러스코나카야마는 지난 4월 ‘도히에몬 박스’라는 개인용 냉각상자를 출시했다.
높이 약 2.1m의 상자 안에 의자가 설치돼 있어 작업자가 들어가 앉으면 머리와 목, 상체를 중심으로 찬바람을 공급한다. 실내 온도를 약 15도로 유지하고 짧은 시간 안에 몸의 열을 식히도록 설계됐다. 지나치게 오래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20분이 지나면 자동으로 작동이 멈춘다.
가격은 150만엔으로 일반 소비자보다 공장과 건설현장, 물류창고, 야외 행사장 등을 대상으로 한 기업용 상품이다. 높은 가격에도 출시 후 약 4개월 동안 300대가량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에어컨으로 넓은 작업장 전체를 냉방하는 대신 휴식이 필요한 사람을 짧은 시간 집중적으로 식히는 방식이 주목받은 결과다.
이들 상품의 공통점은 에어컨 성능을 높이는 데서 벗어나 소비자의 특정 행동과 신체 부위를 정밀하게 식힌다는 데 있다. 컵라면은 조리 과정에서 열을 없앴고, 화장품과 위생용품은 피부가 느끼는 불쾌감을 줄였다. 냉각조끼는 몸 주변에 개인 냉방공간을 만들었으며, 인간 냉장고는 휴식 장소를 하나의 냉각장비로 바꿨다.
폭염이 일시적인 기상 이변이 아니라 반복되는 생활환경으로 인식되면서 냉감 상품 시장도 확대되고 있다. 일본의 땀 억제제와 냉각시트 등 생활·화장품 분야 냉각 상품 시장은 지난해 583억엔 규모로, 4년 만에 50% 이상 성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 7∼8월에 집중됐던 수요도 더위가 빨리 시작되고 늦게 끝나면서 6월과 9월까지 확장되는 추세다.
기업 입장에서 폭염은 계절 마케팅을 넘어 제품의 기본 설계를 바꾸는 요인이 되고 있다. 여름 한정 맛을 추가하거나 포장 색상을 시원하게 바꾸는 방식에서 벗어나 조리 온도와 소재, 사용 장소, 에너지 공급 방식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소셜미디어 시대의 소비 방식도 이색 상품의 성공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찬물에 익는 라면과 얼어붙는 수건, 상자에 들어가 몸을 식히는 장면은 짧은 영상만으로도 기능을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사용 전후의 차이가 분명하고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제품일수록 별도의 대규모 광고 없이도 소비자의 시연 영상이 홍보 역할을 한다.
다만 ‘시원하다는 느낌’과 실제 체온을 낮추는 효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멘톨 성분은 피부의 냉감 수용체를 자극하지만 심부 체온을 직접 낮추는 것은 아니다. 냉각용품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물을 마시거나 그늘에서 쉬는 시간을 줄이면 오히려 온열질환 위험을 놓칠 수 있다.
펠티어 소자와 팬, 냉각스프레이를 사용하는 제품이 늘면서 배터리와 전력 소비, 일회용 용기와 화학성분 처리 문제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폭염 적응 상품이 기후변화 대응에 도움을 주면서도 폐기물과 에너지 사용을 늘리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냉감 상품의 경쟁력은 얼마나 차갑게 느껴지는지뿐 아니라 실제 온열질환 예방에 도움이 되는지,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지, 에너지와 자원을 얼마나 적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고령자와 어린이, 야외노동자처럼 폭염에 취약한 계층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가격과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찬물 컵라면의 품절은 단순히 신기한 음식 하나가 인기를 얻은 사건이 아니다. 기후가 달라지면 소비자의 생활 방식이 바뀌고, 생활 방식이 바뀌면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상품의 조리법과 소재, 형태도 다시 설계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뜨거운 물 없는 컵라면과 냉동고에 넣는 화장품, 몸에 입는 냉각장치, 사람이 들어가는 냉장고는 서로 전혀 다른 제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두 ‘더위를 참는 여름’에서 ‘더위를 관리하는 여름’으로 소비시장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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