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IT

AI가 ‘눈’을 얻었다…뜨거워진 AI글래스 시장, 프라이버시가 대중화 가른다

  • HTC ‘비베 이글’ 글로벌 출시…챗GPT·제미나이 선택 지원
  • 메타 선두 속 삼성·구글 등 가세…무화면형과 디스플레이형 동시 성장
  • 촬영 고지·데이터 보호·착용감, 성능 못지않은 시장 경쟁력으로 부상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스마트폰 화면을 벗어나 이용자의 눈과 귀에 가까워지고 있다. 카메라와 마이크, 스피커를 안경테에 넣은 AI글래스가 실시간 통역과 길 안내, 촬영, 정보 검색을 수행하면서 차세대 개인용 AI 기기의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HTC는 AI 스마트 글래스 ‘비베 이글(VIVE Eagle)’의 판매 지역을 북미와 유럽, 호주로 확대했다. 지난해 대만에서 먼저 선보인 제품을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한 것으로 가격은 499달러다.

비베 이글은 12MP 초광각 카메라를 탑재해 3K 동영상 촬영을 지원하고, 오픈형 스피커와 음성 제어 기능을 제공한다.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고 메모를 남기거나 주변 정보를 검색할 수 있으며, 카메라로 바라본 문자와 표지판 등을 여러 언어로 번역해 음성으로 전달한다.

눈에 띄는 부분은 이용자가 챗GPT와 구글 제미나이 가운데 원하는 AI 모델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나의 AI 생태계에 제품을 종속시키기보다 이용 목적이나 선호에 따라 모델을 고르게 해 플랫폼 개방성을 차별화 요소로 내세웠다.

HTC가 글로벌 출시 과정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화질이나 AI 성능만이 아니다. 얼굴에 착용한 카메라가 상대방 몰래 촬영에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줄이기 위해 프라이버시 보호 장치를 제품 전면에 배치했다.

촬영이 시작되면 안경 외부의 표시등이 작동하며, 이용자가 표시등을 가리거나 임의로 손댈 경우 카메라 기능이 중단된다. 안경을 얼굴에서 벗어도 녹화를 사용할 수 없도록 설계했다. 주변 사람이 음성 명령으로 촬영 중단을 요청할 수 있는 기능도 적용했다.

기기에 저장되는 데이터에는 AES-256 암호화를 적용했다. 외부 AI 서비스를 이용할 때는 이용자 식별 정보를 제거해 요청을 전달하고, 수집된 데이터를 AI 모델 학습에 이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HTC의 시장 진입은 AI글래스 경쟁의 무게중심이 기술 시연에서 일상적인 착용 경험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스마트 글래스는 높은 가격과 두꺼운 디자인, 부족한 배터리, 제한된 용도로 대중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최근 제품은 평범한 안경과 가까운 외형에 카메라와 음성 AI를 먼저 결합하며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

현재 시장에서는 메타가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타는 레이밴과 협력해 패션 안경 형태의 AI글래스를 확산시켰고, 음악 감상과 통화, 사진·영상 촬영, 실시간 통역, 시각 기반 AI 질문 기능을 제공해 왔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2026년 상반기 기준 메타가 세계 AI글래스 시장의 약 80%를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메타는 렌즈 안에 정보를 표시하는 ‘메타 레이밴 디스플레이’도 선보이며 경쟁 영역을 넓혔다. 음성 안내를 듣는 수준을 넘어 메시지와 번역 결과, 사진 미리보기, 보행 내비게이션 등을 사용자의 시야에 직접 보여주는 방향이다.

삼성과 구글도 안드로이드 XR과 제미나이를 기반으로 한 지능형 안경을 공개했다. 삼성의 하드웨어 및 모바일 생태계, 구글의 AI·지도·검색 서비스에 젠틀몬스터와 워비파커의 안경 디자인 역량을 결합했다.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고 사용자가 보고 있는 상황을 AI가 이해해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샤오미를 비롯한 중국 기업과 전문 XR 업체들도 촬영과 번역, 객체 인식, 음성 비서 기능을 갖춘 제품을 내놓고 있다. AI글래스 시장이 메타 중심의 초기 단계에서 운영체제와 AI 모델, 패션 브랜드, 광학기술 업체가 함께 경쟁하는 생태계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시장 성장세도 뚜렷하다. IDC에 따르면 화면이 없는 스마트 글래스의 세계 출하량은 2026년 1분기 약 225만대로 전년 동기보다 167% 증가했다. IDC는 이 유형의 연간 출하량이 올해 약 1360만대에서 2030년 2730만대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당분간 시장은 두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하나는 화면 없이 카메라와 음성 AI, 오디오 기능에 집중해 가볍고 자연스러운 착용감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렌즈에 디스플레이를 넣어 길 안내와 자막, 메시지 등 시각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대중화 속도는 단순히 더 많은 기능을 넣는 것보다 일상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느냐에 좌우될 전망이다. 무게와 배터리 지속시간, 발열, 도수 렌즈 지원, 충전 편의성뿐 아니라 안경 자체의 디자인과 착용감도 중요한 구매 기준이 된다.

스마트폰과 달리 AI글래스는 사용자가 바라보는 방향과 주변의 대화, 위치 정보를 지속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 이용자에게는 편리한 개인 비서가 되지만 주변 사람에게는 자신도 모르게 촬영되거나 음성이 수집될 수 있는 기기다. 제품 구매자의 개인정보뿐 아니라 카메라 앞에 있는 제3자의 권리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촬영 표시등을 가리면 카메라를 중단시키는 기능은 HTC만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 전반의 과제가 되고 있다. 메타 역시 2세대 제품부터 촬영 표시등이 가려지거나 훼손된 것으로 감지되면 카메라를 비활성화하는 기능을 적용했다. 앞으로는 프라이버시 보호 수준도 배터리와 화질처럼 제품을 비교하는 주요 사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표시등 하나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혼잡한 장소나 밝은 야외에서는 표시등을 알아보기 어려울 수 있고, 촬영된 영상이 어느 서버로 전달되는지 주변 사람은 확인할 수 없다. 촬영 사실을 명확히 알리는 공통 기준과 데이터 저장 기간, 얼굴·음성정보 처리 방식, 삭제 절차에 관한 제도적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

AI글래스의 장점이 분명한 분야도 있다. 여행지 통역과 길 안내, 작업 현장의 원격 지원, 회의 기록, 시각장애인의 사물·문서 인식 등 두 손을 자유롭게 유지해야 하는 환경에서는 스마트폰보다 유용할 수 있다. 초기 시장은 이러한 구체적인 효용이 큰 영역을 중심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 AI글래스는 스마트폰을 곧바로 대체하기보다 스마트폰과 연결돼 사용자의 상황을 수집하고 필요한 도움을 전달하는 보조 기기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이후 배터리와 디스플레이, 온디바이스 AI 기술이 발전하면 스마트폰에서 수행하던 일부 기능이 점차 안경으로 이동할 수 있다.

HTC의 가세로 AI글래스 시장의 경쟁 기준은 다시 선명해졌다. AI가 얼마나 똑똑한지만큼 사용자가 매일 쓰고 싶을 정도로 편안한지, 주변 사람이 안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사람의 시선과 가장 가까운 기기인 만큼 시장의 승자는 가장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기업이 아니라 편리함과 신뢰 사이의 균형을 가장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기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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