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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가능한 사랑’ 베네치아 심사위원대상…한국영화, 다시 인간을 묻다

  • 한국영화 14년 만의 베네치아 경쟁부문 수상…심사위원대상은 처음
  • 노동 소멸·계급 불안·관계 단절 파고든 서사와 배우들의 연기 주목
  • 작가주의와 세계 유통망 결합…한국영화의 지속 가능한 창작 기반은 과제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한국영화가 베네치아 경쟁부문에서 수상한 것은 2012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황금사자상을 받은 이후 14년 만이다. 최고상인 황금사자상 다음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을 한국영화가 받은 것도 처음이다.

‘가능한 사랑’은 12일 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리도섬에서 열린 폐막식에서 수상작으로 호명됐다. 황금사자상은 덴마크 마이 엘투키 감독의 ‘우먼 언노운’에 돌아갔다. ‘가능한 사랑’은 폐막에 앞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까지 받으며 작품성과 비평적 성취를 함께 인정받았다.

영화는 파업 과정에서 해고된 노동자 호석과 아내 미옥, 이들의 삶을 촬영하려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와 남편 상우가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설경구·전도연·조여정·조인성이 두 부부를 연기했고, 이창동 감독과 오정미 작가가 각본을 공동 집필했다.

수상의 배경에는 노동과 자본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인물의 욕망과 관계 변화로 풀어낸 이창동 특유의 접근법이 자리 잡고 있다. 해고 노동자의 현실을 직접 고발하는 데 머물지 않고, 서로 다른 계층의 두 부부가 상대의 삶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선망과 불안, 존엄성의 상실을 복합적으로 담아냈다.

이 감독은 노동이 사라지고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지는 시대에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질문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전쟁의 기억과 성 권력, 국가 폭력, 기술이 결합한 전쟁 등을 다룬 작품들이 주요 상을 받은 올해 영화제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동시대적 의제만으로 수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사회구조를 관념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인물의 감정과 윤리적 선택으로 전환한 연출, 네 배우의 앙상블이 보편적인 공감을 끌어낸 핵심으로 평가된다.

이번 수상은 이 감독 개인의 작품세계가 다시 국제적으로 확인됐다는 의미도 있다. 그는 2002년 ‘오아시스’로 베네치아 감독상을 받았고 당시 문소리는 신인배우상을 수상했다. 2007년 ‘밀양’으로 전도연에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겼으며, 2010년 ‘시’로 칸 각본상을 받았다. 2018년 ‘버닝’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다시 세계 영화계의 중심에 선 셈이다.

한국영화의 국제적 저력도 단발성 흥행보다 창작자의 지속적인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1987년 강수연의 베네치아 여우주연상을 시작으로 이창동과 김기덕, 박찬욱, 봉준호, 홍상수 감독 등이 베네치아·칸·베를린에서 성과를 축적했다. ‘기생충’의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 이후에도 한국영화가 특정 장르나 한 명의 감독에 의존하지 않고 사회 현실을 독창적인 영화 언어로 번역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넷플릭스가 투자·유통에 참여한 점도 달라진 제작 환경을 보여준다. 세계적인 감독과 한국 배우, 글로벌 플랫폼이 결합하면서 제작 규모와 해외 관객 접근성을 확보했다. 반면 플랫폼 중심 제작이 극장 생태계와 신인 창작자에게도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지는 별개의 과제다. 거장의 성취를 산업 전체의 경쟁력으로 이어가려면 다양한 규모의 영화가 제작되고 발견될 수 있는 투자·배급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

‘가능한 사랑’은 오는 23일 국내 극장에서 먼저 관객을 만나고 11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제99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 출품작으로도 선정됐다. 베네치아 수상이 실제 후보 지명으로 이어질지는 남은 해외 배급과 캠페인 결과에 달렸지만, 한국영화가 지역의 현실을 세계의 질문으로 확장하는 힘을 다시 증명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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