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얼굴’ 안성기, 시대를 연기한 배우 영면
- 아역에서 국민 배우까지 70년, 한국 영화사의 산증인
- 실미도·라디오스타로 흥행과 품격을 동시에 증명
- 연기와 삶으로 영화인의 책임을 보여준 ‘큰 어른’
‘국민 배우’ 안성기가 5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 1957년 아역 배우로 데뷔한 이래 7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스크린을 지켜온 그는 한국 영화사의 흐름과 궤를 함께하며 한 시대를 연기한 배우였다. 대통령과 거지, 스님과 군인, 평범한 가장에 이르기까지 그의 얼굴은 곧 한국 영화의 얼굴이었다.
안성기는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했다. 지난해 말 자택에서 음식물이 기도에 걸려 쓰러진 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치료를 받아왔다. 2019년 혈액암 진단 이후 완치와 재발을 겪으며 투병을 이어왔지만, 끝까지 연기에 대한 의지와 복귀의 꿈을 놓지 않았던 그였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스크린과 함께 성장한 배우였다. 다섯 살이던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 그는 ‘모정’, ‘하녀’ 등 수십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당대 최고의 아역 스타로 성장했다. 이후 학업과 군 복무로 잠시 스크린을 떠났지만, 1977년 복귀해 19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성인 배우로서 확실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이 작품에서 안성기는 시대의 그늘 속에서 흔들리는 청춘을 연기하며 한국 영화 리얼리즘의 부활을 상징하는 얼굴이 됐다.
1980~90년대 그는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끈 중심에 있었다. ‘고래사냥’, ‘만다라’, ‘깊고 푸른 밤’, ‘남부군’ 등을 통해 시대와 인간의 고뇌를 깊이 있게 담아냈고, ‘투캅스’에서는 대중성과 유머를 겸비한 연기로 장르적 확장에도 기여했다. 청룡·대종상·백상 남우주연상을 모두 수상한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은 그의 연기 내공을 상징하는 이정표였다.
2003년 ‘실미도’는 또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한국 영화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이 작품에서 그는 비극적 현대사를 온몸으로 끌어안았고, 이후 ‘라디오 스타’를 통해 중후한 인간미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170편이 넘는 필모그래피는 양적 기록을 넘어, 시대와 함께 호흡해온 한 배우의 궤적이었다.
안성기는 작품 밖에서도 ‘큰 어른’이었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표현의 자유 수호, 불법 다운로드 반대 등 영화계의 굵직한 현안마다 가장 앞줄에 섰고, 30년 넘게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조용한 연대를 실천했다. 연기는 직업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그의 태도는 후배 영화인들에게 오래 남을 유산이다.
“새로운 영화로 인사드리겠다”던 그의 마지막 약속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안성기가 남긴 얼굴과 목소리, 시대를 관통한 연기는 스크린 위에서 계속 살아 있을 것이다. 한국 영화의 70년을 함께 걸어온 한 배우의 여정은 그렇게 별이 되어 남았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의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9일 오전 6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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