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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 신드롬, 5천년의 K-컬처 DNA로 글로벌 한류의 정점을 찍다

  • 41개국 넷플릭스 1위, 빌보드 차트 진입까지 기록한 애니메이션의 글로벌 돌풍
  • 드라마에서 K-pop, 영화까지 25년간 진화해온 한류의 역사적 전환점
  • 한국의 독특한 문화적 DNA와 창조적 융합 능력이 만들어낸 세계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

2025년 여름, 전 세계가 한 편의 한국 애니메이션에 열광하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41개국에서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를 차지하며 11일 연속 글로벌 정상을 유지했고, OST 앨범은 올해 발매된 OST 중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극중 걸그룹 ‘헌트릭스’와 보이그룹 ‘사자보이즈’의 곡들이 미국 빌보드 핫 100에 2곡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애플뮤직 앨범 차트 4위까지 올랐다.

이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의 성공을 넘어선 문화적 현상이다. 한국, 일본, 대만, 베트남,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는 물론 프랑스, 독일, 미국 등 북미와 유럽에서도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이 작품은 케이팝이라는 장르 자체를 소재로 하면서도 무당, 저승사자 등 한국 전통문화의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융합시켰다. 컵라면, 국밥, 호떡 등 일상적 한국 문화 요소들까지 섬세하게 담아내면서 한국적인 것의 세계적 가치를 증명해 보였다.

이러한 현상은 한류가 이제 완전히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과거 한국 문화가 특정 지역이나 특정 세대에 국한되어 인기를 얻었던 것과 달리, 이제는 연령과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 문화 코드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한류의 여정을 되돌아보면 그 발전 과정의 역동성이 놀랍다. 1990년대 중반 TV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 CCTV에서 방영되어 중국 역대 수입 영상 콘텐츠 2위를 기록하면서 ‘한류’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초기 한류는 아시아 지역에서 주로 드라마를 통해 여성들에게 발현되었으며 이후 K-POP으로 분야가 확장되었다.

1세대 한류는 2000년대 초반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드라마 수출 중심의 생성기였다. ‘겨울연가’, ‘대장금’ 등이 아시아 전역에서 신드롬을 일으키며 한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세대 한류는 2000년대 후반부터 K-pop이 주도하며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남미까지 확산된 시기다. 동방신기, 소녀시대, 빅뱅 등이 아시아 전역에서 콘서트를 열며 한류의 지평을 넓혔다.

3세대 한류는 2010년대 중반 이후 BTS, 블랙핑크 등이 서구 주류 음악시장에 진출하며 시작되었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의 확산으로 한류는 정부나 기업의 전략이 아닌 팬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오징어 게임’, ‘기생충’을 거쳐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이르기까지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는 4세대 한류의 시대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문화가 이토록 강력한 세계적 경쟁력을 갖게 된 근원은 무엇일까. 이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독특한 지정학적, 역사적, 문화적 특성들의 복합적 결과물이다.

먼저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가 만들어낸 문화적 DNA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잇는 교량 역할을 해왔으며,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외부 문화를 받아들이고 재창조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특성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외래문화에 대한 개방성과 동시에 그것을 한국적으로 변용시키는 창조적 융합 능력을 기르게 했다.

한국의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 역시 문화적 감수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계절의 변화는 한국인들에게 섬세한 정서적 표현력을 길러주었고, 이는 드라마의 서정적 스토리텔링이나 K-pop의 감성적 멜로디로 구현되어 전 세계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봄의 설렘, 여름의 역동성, 가을의 애잔함, 겨울의 깊이 있는 내성이 모두 한국 문화 콘텐츠의 정서적 토양이 되었다.

한국의 역사적 경험 또한 독특한 문화적 역량을 만들어냈다. 수천 년간 외침을 받으면서도 고유한 정체성을 지켜온 경험은 한국인들에게 강인한 생존력과 적응력을 길러주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분단,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격동의 20세기를 거치면서 한국인들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정신력과 빠른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을 체득했다. 이러한 경험은 역경을 딛고 성장하는 스토리, 꿈을 향한 열정적 도전 등 한류 콘텐츠의 핵심 서사로 형상화되어 전 세계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한국인의 민족적 특성으로는 무엇보다 ‘정(情)’의 문화를 들 수 있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 한국의 ‘정’ 문화는 소중한 가치로 재조명받고 있다. 가족, 친구, 동료와의 끈끈한 유대감,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따뜻한 마음이 한류 콘텐츠 전반에 녹아있어 메마른 현대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 또한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와 ‘할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는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시대의 트렌드를 재빠르게 포착하고 창조적으로 구현해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교육열과 성취욕구 역시 한국 문화산업이 경쟁력을 갖게 하는 근원이다. 한국의 치열한 교육 환경은 표면적으로는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지만, 동시에 완벽을 추구하는 장인정신과 끊임없는 자기계발 의지를 길러냈다. K-pop 아이돌들의 혹독한 연습생 시스템, 드라마 제작진의 완벽주의적 작품 추구, 영화인들의 세밀한 디테일에 대한 집착 등이 모두 이러한 문화적 토양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와 개인의 창의성이 절묘하게 결합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아이돌 그룹의 완벽한 팀워크와 개별 멤버의 개성이 조화를 이루고, 드라마나 영화 제작에서 감독, 작가, 배우, 스태프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협력하면서도 각자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이는 서구의 극단적 개인주의나 동양의 획일적 집단주의와는 구별되는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적 특성이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한국의 IT 인프라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특성이 한류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망과 스마트폰 보급률,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젊은 세대의 디지털 감수성이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을 통한 한류의 바이럴 확산을 가능케 했다. 특히 팬덤 문화와 SNS가 결합되면서 전 세계 한류 팬들이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문화를 공유하는 글로벌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언어적 특성도 간과할 수 없다. 한글의 표음문자적 특성은 외국인들이 상대적으로 쉽게 한국어를 접할 수 있게 해주었고, 한국어 특유의 섬세한 존댓말 체계와 감정 표현은 깊이 있는 인간관계와 정서를 담아내는 데 유리했다. 또한 한국어와 영어의 절묘한 믹스는 K-pop에서 글로벌한 어필과 한국적 정체성을 동시에 구현하는 효과적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한국의 문화적 저력들이 21세기 글로벌화 시대와 만나면서 폭발적 시너지를 창출했다. 전통과 현대의 융합, 동양과 서양의 결합, 로컬과 글로벌의 조화라는 한국문화의 특성이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의 니즈와 정확히 부합한 것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케이팝이라는 현대적 소재와 무당, 도깨비 등 전통적 소재를 자연스럽게 융합시킨 것이 바로 이러한 한국문화의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처럼 한국문화에 대한 세계의 관심과 호감이 정점에 이른 것처럼 보이는 지금이지만, 한류 현상의 지속적 확산과 한국문화의 세계적 위상을 더욱 높여나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콘텐츠의 다양성 확보가 시급하다. 현재 한류는 K-pop과 드라마에 집중되어 있어 장르의 편중 현상이 심하다. 웹툰, 게임, 애니메이션, 전통문화 등 다양한 분야로의 확장이 필요하며,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은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창작 인력의 지속적 양성과 처우 개선도 중요한 과제다. 한류의 성공이 소수 스타에게만 집중되고 실제 창작을 담당하는 작가, 작곡가, 제작진들의 처우는 여전히 열악한 상황이다. 창작 생태계 전반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무분별한 양적 확장보다는 질적 향상에 집중해야 한다. 단기적 수익을 위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보다는 깊이 있고 의미 있는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생산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세계 각국의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한국적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섬세한 문화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메타버스, AI, VR/AR 등 신기술과 문화콘텐츠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경험의 창출이 중요하다. 전통적 콘텐츠 소비 방식을 넘어서는 혁신적 플랫폼과 서비스의 개발이 한류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나아가 한류의 성공은 단순히 한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문화의 다양성과 상호 이해 증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한국이 세계문화를 선도하는 국가로서 다른 나라들의 문화발전을 지원하고 문화 간 교류를 촉진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개발도상국의 문화콘텐츠 산업 발전을 위한 기술 전수와 인력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한국의 콘텐츠 제작 노하우와 디지털 플랫폼 운영 경험을 공유하여 각국이 고유한 문화콘텐츠를 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또한 국제 공동제작 프로젝트를 활성화하여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문화적 편견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한류의 확산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화제국주의적 우려를 불식시키고, 진정한 문화 간 소통과 이해를 촉진하는 콘텐츠를 제작해야 한다. 특히 아시아 문화의 다양성을 포용하고 서구 중심의 문화 질서에 대한 건전한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이 기대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전 세계적 성공은 한류가 이제 단순한 문화 수출을 넘어 인류 공통의 문화 자산을 창조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독특한 문화적 DNA가 만들어낸 이 놀라운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세계 문화 지형을 변화시켜 나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성취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깊이 있고 의미 있는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여 진정한 문화 강국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한국문화가 세계와 소통하고 공존하며 함께 성장하는 미래를 그려나가는 것, 그것이 한류의 궁극적 지향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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